아들러 철학은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살지 않으면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계속해서 남의 기준과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남의 기준과 비위를 완전히 무시하며 살아가기가 어렵지요.
게다가 그 남이 나보다 더 나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상대로부터는 미움에서 그치지 않고 상처까지 받을 가능성도 높지요.
저도 예전에 우리 업계의 가장 크고 유명한 학회의 회장님이 저를 총무 이사를
시키면서 오랜 세월을 옆에 두고 자꾸 이런저런 잡일까지 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해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올해부턴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상당히 언짢아하시면서 자네보다 더 선배도 내 말대로 하는데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서운해 하시더군요.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간곡히 말씀드렸지만 그 다음부턴 결국 사이가 소원해 졌습니다.
그 분의 발언이 갖는 권위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겐 돈보다는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피올라 마음 학교]였지요. 물론 사업상은 좀 불이익이
있었지만 저는 이 길이 더 공익과 저의 꿈에 부합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남에게 미움과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서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과 삶을 경험할 기회를 날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인생을 낭비하거나 가장 가치있는 경험을 위해 살고 싶다면
누구나 기꺼이 “미움받고 상처받을 용기”와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너는 네 길을 가지만 나까지 그 길을 따라가야 할 이유나 의무는 없습니다.
대승기신론의 생멸문과 진여문에 대한 가르침은 그런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말씀입니다. 인생이란 결국 내 육식 활동의 양과 질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그에 반드시 생겨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지혜있는 안목을 갖춰야 합니다.
진여문(O) 자리에 깨어나 생멸문(육식 활동의 내용물)을 볼 수 있게 된 사람은
모든 생각, 감정, 감각의 분별 내용(색)들을 공하게 보므로 뭔 일이 있더라도 늘
아무 일도 없는 것과 같게 됩니다. 그래서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이 하나의 영상처럼 가볍고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진리를 불이법(일체가 하나다)을 설하신 이유는 모든 게 다 내 의식 안의
한 덩어리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 의식 세계를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면서 그
스펙트럼을 무지개처럼 최대한 경이롭고 아름답게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의식과 내 의식이 겹칠 때 우리는 그걸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역시 인간의 육식 기능이란 주관적 체험을 잠깐 공유 공감하는 것 뿐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진여문(O) 자리에 깨어난 이들만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무사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뭔가를 미세하게나마 붙잡고
그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게 객관적이라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인류는 미움(상처)받을 용기를 가진 소수에 의해 과거의 고정 관념이나 집단 무의식
으로부터 깨어났으며 발전 진화해왔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응당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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