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금(至今; now)이란 찰나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과거나 미래도 지금 안에서 생각할 때 있는 것이니 결국 지금 안에 과거나 미래도
다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현재인 건 아닙니다. 왜냐면 현재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상대로서 찰나인 지금보단 좀 더 시간 길이가 길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게 의식이 없으면 사라져버리는 생각 속의 감각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란 생각이 가리키는 건 대체 무엇인지 조금만 더 깊이 알아봅시다.
지금은 '의식이 어떤 현상 경계를 마주할 때 일어나는 인식'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육근(의식)이 육경(경계)을 접하면서 일어나는 인식 현상(육진)의 이름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세상의 물질이 나와 따로 모두 다 실재한다고 믿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식(육근)이 물질(육경)을 접촉해 생기는 마음 현상(육진)이란
세 가지 요소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것도 나 없이도 스스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물질 뿐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관념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인간 의식의 인식 구조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는 마치 본래는 필름 뿐인
영화가 왜 리얼한 현실(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처럼 인식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관념 연속성]이란 동영상 필름의 잔영 효과 즉 동영상이 일으키는 인식
과정 속에서 잠깐 남는 마음의 잔상 효과 때문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선 육진(六塵
; 육식 활동이 일으키는 찰나적인 분별의 잔상 효과) 번뇌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해
제 마음이 잔상 효과(분별)를 연속되는 진짜 현실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12 연기 중에 유전 연기 과정 속에 끝없이 일어나는 명색 놀이(이것은 뭐다,
저것은 뭐다)에 도취한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 관념이 연속된다고
말하는 것이며, 바로 이게 일체를 ‘여몽환포영’으로 보지 못하는 중생심입니다.
그러므로 '깨어난다'는 건 일체를 관념 연속성(자동적인 명색 만들기 과정)으로
대하는 과거의 마음에서 깨어나 내가 여태 뭔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정견하며
정신을 차리는(의식이 의식 자체를 보고 자각함)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이 모든 세상 전체가 다 내 마음의 분별 놀이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금이 모두 내 꿈임을 보고 깨어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악몽을
꾸다가 확 깨어나서 본래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혼자서만 그렇게 괴로워했었음을
자각 인식하면서 허탈하게 웃음짓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그 순간부터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본래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현실이란 곧 내가 그렇게 여긴 긴 꿈임에
활짝 깨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너무나도 밝은 본성의 빛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채 다만 생명의 육식 놀이란 축제임을 보며 즐겁게 살아가는
일만이 남게 되는 것이지요. 진공 묘유의 흥미로운 삶, 진실은 이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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