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물리학에선 이미 전자와 원자가 우주에서 영생하는 존재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진리는 영원불변한 것이니까 과학적으로 말하면 진리는 전자와 원자요,
이게 바로 하나님, 부처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무슨 불경한 말이냐구요?
하지만 양자 물리학을 공부한 분들은 아십니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관찰자는 사람이 아니라 우주에 충만한 미지의 의식이란 것을.
즉 사람이 의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우주의 대생명의식 중 가장 정묘한 의식이
사람이란 현상을 만들어 잠시 살려가면서 유지 보존시키는 게 삶(生), 중단하는 게
우리들이 말하는 죽음(死)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상식과는 반대로 우주의식이 사람이란 현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곧 본래 생사일여(生死一如)하다는 말입니다.
즉 죽음은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상태가 변화한 결과 현상]만을 말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본질은 보지 않고 늘 보이는 현상 만을 보면서 규정하며 살아가니까요.
그러니까 죽었다고 소멸한 게 아니라 존재 현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태어났다는 것(生)도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불교의 공(空)이란 바로 이렇게 모든 나타난 존재 현상들은 다 자꾸 변화되어가는
살아 움직이는 상태 속에 있기에 그 실재성이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空)을 ‘텅 비었다’거나 ‘없다’라고 모양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오해입니다.
물리학에서 중첩(overlap)이란 말은 동시에 입자이자 파장이란 양면성을 같이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린 입자로 나타나면 살았다 좋아하고 파동으로 변하면 죽었다 슬퍼합니다.
결국 실상은 보지 않고 단지 수시로 변하는 현상 만을 보면서 일희일비하는 것이지요.
실상은 다 우주의식이 연기법따라 변하는 것 뿐임에도 .
이 글의 목적은 ‘생과 사로 나타나며 움직이는 영원한 미지의 것이 있다’는 실상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게 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있다거나 없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활동해서 인간이란 현상을 나타낼 때 우리는 이것을 생명과 의식이라고 부릅니다.
깨어남이란 바로 이것을 보는 것이며 깨달음이란 이것 자체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이 따로 있다면 다 말과 모양이라서 결국 일시적 환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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