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계, 색계, 무색계(삼 계)중 어느 하나(현상)에 만 머무르는 중생은
아직 무언가에 습관적으로 집착하며 자꾸 빠져들기에 본질(살아있는 O)을 보지 못합니다.
사실 ‘살아있는 O’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말 또한 문자로서 그저 생각일 뿐이기에
본질인 진리(부처, 하나님)를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아니지요.
개구즉착(뭐라고 입만 열면 이미 틀렸다)이란 말도 있듯이 그 어떤 일시적 현상도
온전히 본질을 다 나타낼 순 없기에, 아무리 좋거나 엄청난 평화와 각성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 현상을 붙들거나 빠져든다면 결국 잘못하는 공부가 됩니다.
흔히 “자신의 마음공부가 지금 어떠냐?”하고 물으면 대부분 과거에 비해서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신이 가볍고 좋다고 말하십니다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마음의 일시적인 현상인 겁니다.
본질은 항상하는 것이므로 과거에 없던 게 지금 잠시 좋거나 마음에 들게 나타나 있다면
그것에 큰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마음공부를 잘해가노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좋은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짐은 물론 은은한 빛이 나타나고 때론 미묘한 기운이 나타나서
나를 감싸고 품어주기도 합니다. 지복과 환희 속에 영적 세계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스위스 같은 경치 좋은 나라를 기차로 출장 감과 같습니다.
즉 지나가는 아름다운 경치에만 연연하면 그건 출장의 본질은 아닌 겁니다.
행여 그 출장의 결과가 시원치 않다면 그 아름다운 경치가 내게 과연 얼마나 큰 마음의 기쁨이 될까요?
그러니 일시적 일부 현상에 도취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묻는 질문에는
얼마만큼 자기의 분별에 대해 깨어났는가를 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편해져도 아직 O을 분명히 못 봤다면 결국
아닌 건 아닌 거고, 잘못된 건 잘못된 겁니다. 현상을 본질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중요한 핵심은 ‘현상과 본질은 늘 같이 있다’는 겁니다.
즉 좋든 싫든 현상이 있는 곳엔 반드시 본질이 같이 활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본다는 것은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현상들이
더 이상 본질로 흔들림 없이 보일(분별없이) 때라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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