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몸, 마음(육식 활동), 그리고 (순수 투명한)의식을 갖고 삽니다.
이 셋 중에 어느 게 가장 근원적인 것일까요?
그것은 아침에 잠에서 깰 때 자기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보면 압니다.
순수한 의식이 먼저 돌아오고 그 다음에 서서히 마음과 몸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의식 속에 존재하는 육식 활동(생각, 감정, 감각)입니다.
몸은 따로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몸도 생각 감각의 조합일 뿐
설령 육식 활동을 벗어나서 따로 있다 해도 우린 육식 활동을 통해서만 알 뿐입니다.
하지만 물질 세상은 늘 물질 몸을 기본 단위로 해서 생각하게 하므로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젠 대다수가 거꾸로 제 몸 안에 마음과 의식이 들어 있다고 착각합니다.
깨어남이란 이런 전도된 생각이 착각이며 실상은 순수 투명한 의식(물)안에서
몸과 마음이란 육식 활동(물결)이 일어나는 게 삶임을 분명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차 존재의 중심이 더 이상 몸이나 마음(생각 등)에 갇혀있지 않고
아무런 한계나 제약 없는 다만 [봄+앎]의 기능으로 자각 인식되는
순수 투명한 의식 쪽으로 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순수 의식은 단지 그 이름이 의식일 뿐 사실 아무런 형상이나 모양이 없으므로
[봄+앎]의 기능을 갖고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더 세밀하게 잘 살펴보면 (순수)의식은 낮 동안 우리 눈앞에
이미 무 경계로 무한하게 활짝 펼쳐져 있음을 정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전체를 다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깨어남이란 이걸 생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꾸준한 정견을 통해 실제로 자신이 몸도 마음 활동도 아님(무아)을 직접 봐야 합니다.
순수한 앎과 봄의 의식 상태에 의식의 초점이 가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 머무르며 마음이 또 분별하면 뭐든 없다고만 여기는 공(空)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있다, 없다라는 것도 미세한 자기 마음이 만든 분별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는 모든 분별을 다 해도 그 분별 속에 빠져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분별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일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항상 맑고 청명한 순수 의식이면서
동시에 몸과 마음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머무르고 희로애락을 두루 경험하는 겁니다.
이러한 상태를 반야 지혜(깨달음)를 얻었다 하며 심신이 무얼하든지 간에 틈 없이 말끔하여
다 보고 알지만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여여한 것을 해탈 열반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자기를 몸과 마음으로 여기면서 존재의 중심을 의식으로 옮긴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역발상으로 나는 '본래 보이지 않는 생명이자 의식인 바
그것이 전도 몽상으로 몸과 마음을 경험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발상적 관점이 깨달음에선 십 년 세월을 앞당겨줍니다.
O 자리를 봤다면 이젠 O에서 이미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지켜보고 아는
정견의 시선으로 있어 보세요.
이 안목이 당신을 훨씬 더 빠르게 분명한 깨달음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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