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통과 번뇌를 만드는 역경계란 생각, 감정의 결합체입니다.
그 둘은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 나를 번뇌와 감정의 소용돌이속에 빠뜨리지요.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육식활동이 만드는 내용(꿈)으로서 생멸문에 속합니다.
반면에 이들을 침묵속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아는 진여문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진여문의 존재를 거의 모르므로 생멸문속에 거하며 나를 보호하고
지키거나 자기 생각이 규정한 적(대상)과 싸우거나 대립합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생명법신의 진여문은 숨을 쉬고 피를 돌리며 자연스럽게 있습니다.
진여문이 평화스럽게 자기 할일을 하는 동안 생멸문은 분노와 미움속에서
온갖 소동을 다 벌이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누구랑 싸우며 대립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식의 초점이 아주 깊이 생멸문속에 갇혀 있다는 겁니다.
즉 공부를 바로하는 이라면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생멸문속에 갇혀있는 자는 내가 공부해서 정견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진여문속에 잠시라도 제대로 있어본 이라면 정견은 이미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어지고 있음을 보고 본성자리에 깨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뭘하든지 그걸 다 ‘보고 아는’ 내면의 눈을 이미 갖고있지 않나요?
그러니 저절로 잘 되고 있는 정견을 내가 더 잘해보겠다고 명상같은 수행을
따로 더할 필요는 본래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해도 아직 정견이
잘안되는 초보들을 위해 명상이나 요가 같은 예비단계가 필요할 뿐이지요.
생멸문속에 거하는 사람은 나를 보호하고 지키며 상처를 쉽게받는 연약한
인간으로 여기지만 진여문에 있는 이는 나는 생각이 만든 꿈 같은 허상임을 항상
분명하게 봅니다. 따라서 생멸문에 사는 이는 자꾸 나를 보호하고 지키려하지만
진여문에 있는 이는 그럴 내가 본래 무아이기에 간밤의 꿈같이 텅비어 없습니다.
생멸문에 있는 사람은 분별된 자기 생각,감정에 빠져 흥분하지만, 진여문에 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감정이 본래 모두 허망한 하루밤의 꿈같은 거품임을 봅니다.
그래서 삶은 본래 진여문에 있어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데도, 내가 온갖 번뇌를
만들면서 그 생멸문속에서 스스로 괴로와하고 있다는 진실에 깨어납니다.
지금 이순간도 여러분의 진여문은 숨도 잘쉬고 소화도 잘시키면서 평온하게
잘 작동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를 만들까요?
의식의 초점을 생멸문에 둔채 자기 에너지를 다 쏟아 분별된 내용에 집착하는
그오랜 업력 때문에, 무명의 육식활동이 진여문을 가려버리고 생멸문속으로
자신을 끌어들이는 이 참담한 현실을 바로보지(정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생명)은 본래 진여문에서 나온 것이라 지금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삶에서 [내가 지금 문제속에 있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진짜 문제는 바로 “나, 나의 문제”라는 지금 이 생각을 정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생멸문속에 갇혀 머무르는 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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