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하는 데 가장 크고 중대한 장애가 뭔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내가 공부해서 진리와 하나 된다]라는 착각(생각 분별)입니다.
내가 공부해서 진리와 합일하겠다는 것은 에고(아상)가 만든 탐심입니다.
이런 욕심 하에서 공부한다면 평생해도 그 생각이 장애가 되어 진전이 없습니다.
반야심경도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이라 말하듯이 오온(생각)을 공하게 봐야만
번뇌(일체고액)를 넘어 갈수 있는데, 자꾸 자기란 생각(아상)이 중심이 되어
이렇게 해보다가 안되면 또 저렇게 해보면서 세월만 낭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생명)을 보는 안목(눈)이 중요한 이유는 아상(자기 생각)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에 포섭되어 따라다니는 한 자기 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자기 아상(생각)이 본래 공함을 보고 나만 사라지면 이미 완전한 잔리인데
자꾸 자기가 나서서 뭔가를 더 얻겠다고 설쳐대다보니까 갈 길이 멀게 보입니다.
법은 이미 내 옆에 있으며 도(道)는 먼 훗날 어디선가 만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법은 이미 나 자신이며 의식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만 바로 보면(정견하면) 되는데 자꾸 자기 생각에 속아 생각이 움직일 때마다
정신을 못 차린 채 또 속아 넘어가고 또 속고 하니 문제인 것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일부러라도 정견을 하라고 하지만 사실 정견은 이미 저절로 늘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정견하기를 습관화함으로써 나중엔 저절로 정견이 이미 잘
되고 있음, 이 실상에 깨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뭘 하든지 법(생명과 그 활동)을 보는 안목이 분명하다면
그는 모든 게 다 꿈같이 지나가는 일이며 물질 세상 속 어떤 것도
영원한 실재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고 깨어납니다.
스크린 위에 영상들이 다 빛의 활동임을 봐야 비로소 영상들의 내용물에서 벗어나
스크린과 빛을 볼수 있게 되는 것처럼,
깨어남도 자기 육식 활동(영상)이 전부 환영임을 보아야만 O자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에서 깨어나려면 가장 먼저 내가 생각임을 철저하게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꾸 습관대로 [나]가 있다는 전제 하에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면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으므로 끝도 결국은 어긋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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