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이란 육식 활동이 만든 번뇌에서 벗어나 생명 본래 상태로 있는 걸 말합니다.
살면서 큰 걱정 근심 속에 있다가 누군가의 도움이든 자기가 어찌해서 해결되든
아니면 자연스럽게 한번에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순간에 그 얼마나 시원 상쾌하면서 마음이 가볍게 되던가요?
해탈(解脫)이란 바로 이렇게 자기 생각, 감정, 감각들이 얽혀서 만들어진 고뇌와
스트래스로부터 완전히 깨끗하게 벗어나는 걸 말합니다.
깨달음의 본질은 복잡하고 교묘한 이론이 아니고 이 같은 힘든 마음으로부터의 해탈 체험입니다.
해탈 이후의 일상은 매 순간이 빛과 평화, 안식과 기쁨의 향연이지요.
반야바라밀이란 말도 있지만 이것도 번뇌로 가득 찬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말하는 겁니다.
즉 육식 활동(생각,감정, 감각)의 내용물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걸 말합니다.
이걸 반야지혜라고도 하지만 생각 속 지혜가 아니라
일체 생각을 훌쩍 다 벗어나 있는 차원에 들어가는 요령(?)을 말하는 겁니다.
이런 건 누구의 논리적 생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을 넘어선 차원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알고 모르는 것을 넘어서 [깨달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겁니다.
피안이란 곧 생각을 벗어난 세계이며, 차안이란 생각 속 세계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생각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해도 안 한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면 과거엔 생각과 O자리가 99: 1 이었다면
성품을 보고 깨어난 후에는 이게 1: 99비율로 역전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99 %의 맑고 청명한 하늘에 1 %의 구름이란 없는 것과도 같게 되는 겁니다.
물론 깨어나서도 처음엔 이게 단박엔 안되고 자꾸 생각 속으로 다시 빠져들고
헤메다가 다시 정신차리고 벗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채 반복됩니다.
하지만 한번 O 맛을 제대로 봤다면 이자리를 완전히 놓쳐버리진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자꾸 O을 챙기고 주의를 환기해서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O의 %가 커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보림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빠른 사람도 10 년, 늦은 사람은 20 년 이상 평생도 걸립니다.
그러나 보림 기간 중에도 그의 내면은 점점 더 새털처럼 가볍고 태양처럼 밝아져 갑니다.
그리고 전엔 잘 보이지 않던 자기 생각과 감정, 감각의 충동들이 점점 객관화되어
대상으로 잘 보이게 됩니다. 이걸 해탈 체험이라 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란 방어하던 껍질이나 자기 틀(생각 세계)을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지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세요. 뭔가 알지 못할 힘이 이처럼 아침 되면 눈떠서
의식을 되찾게 하고 피를 돌려주며 아침 식사한 걸 소회시켜 줍니다.
이것이 다 나도 모르는 99 %의 생명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왜 그걸 안봅니까?
하지만 중생들은 여전히 1 %에 해당하는 자기의 생각,감정,감각들 속에만 갇혀서
빠져나올 줄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 육식 활동의 내용물(대부분은 탐진치)안에
홀딱 정신을 잃고 빠져있으니 경이롭게 나란 현상조차 있게 하는 생명의 은총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채 자기의 생각과 탐진치 또는 개인적 기분에만 빠져
잠이 덜 깬 사람처럼 취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해탈은 생각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란 존재 현상의 배후에서 이 모든 일들을 일으키고
운행하시는 생명력, 그걸 분명히 보고 듣고 느낌(체험)함으로서 존재의 중심이 그 쪽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비로소 일어나는 내 의식 세계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해방감이며,
현실이란 다 내 육식 활동의 내용물이었음에 깨어나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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