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은 왜 환영인가?(2026.10.18.)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 사단법인 피올라

나와 세상은 왜 환영인가?(2026.10.18.)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김연수 교장선생님의 나를 깨우는 아침 명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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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은 왜 환영인가?(2026.10.18.)

관리자     0건    12회    26-10-18 15:24

석가의 치열한 수행을 봤던 근처의 브라만이 어느 날 보리수 아래를 지나가다가 

석가의 얼굴이 예전과 달리 평안하고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그대의 얼굴이 좋아진 것을 보니 마침내 깨달은 모양이구려. 그렇다면 하나만 

묻겠소.  도대체 이 세상의 근본적 실체가 무엇이오?"


그러자 석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12 입처의 활동 결과인 환영이오." 

그때까지 브라만들은 세상의 본질을 시바신이 지수화풍으로 창조한 물질들의 

결합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대답은 너무나 엉뚱해서 그 브라만은 이해가 

안된 채 고개를 흔들며 지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12 입처(12 入處)가 대체 뭘까요? 12 가지란 [육근; 안이비설신의]과 [육경; 

색성향미촉법]을 말하며 입처(入處)란 ‘뭔가 들어와 생겨나는 곳’이란 뜻이니 

연기법에 의해 일어난 마음의 인식 활동(육진; 분별)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눈앞의 사과를 보고 있다’고 합시다. 사과를 인식하려면 

내 눈(육근)이 사과를 보는 상황이 일어나야 하며, 이 상황은 사과 모양이 내 눈의

망막에 영상으로 맺히고(육경) 신경의 전달 활동에 의해 뇌에서 잘 익거나 아닌 

사과 이미지로 분별됨으로써(육진) 비로소 내가 사과를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 생겨난 사과는 2 개인데 나는 실제의 사과를 본 게 아니라 

내 망막에 맺힌 영상을 뇌가 해석 분별한 이미지(환영)를 본 것이지요. 그러길래 

우리는 밧줄을 뱀으로 잘못 착각 오해해서 보는 일도 가끔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실재를 보는 게 아니라 그게 보여진 상(相)만을 보는 것입니다. 

2500 년전에 석가는 바로 이 비밀을 꿰뚫어 보신 겁니다. 정말로 기가 막히지요?

그렇다면 보여진 환영이 진짜입니까? 아니면 보고 인식하는 것이 본질입니까?

답은 명백합니다. 그래서 보여지는 나(몸)와 이 세상은 다 망막에 맺힌 영상일 뿐 

스스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뭐든 보고 인식하지 않으면 내겐 없습니다. 


인식이란 것을 본질적으로 이런 구조 속(12 처의 활동)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진짜 이 세상의 실상일까요? 단단한 돌맹이나 쇠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우리 의식

활동이 그렇게 인식하고 느껴서 실재한다고 여기는 나 자신의 12 처 활동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물이나 산소를 H2O, O2라고 이름을 붙여도 우리에겐 

그건 생각 속 이름일 뿐 실체는 안 보입니다. 우리는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12처의 

활동 속에서 착각 분별을 일으켜 마치 그것이 그렇게 단단하게 느껴지거나 보이니까 

혹은 그런 특징과 작용이 있으니까 따로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대단한 허구의 착각 속에 갇혀있는 겁니다.

나와 세상의 본질은 잘 정견해 보면 다 이렇고 예외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결국

다 공하다는 것(필경공)입니다. 이제 왜 만물이 공하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깨어남이란 단단한 돌과 쇠를 억지로 공하게 보려 해서 되는건 아닙니다.

'세월이 가면 다 부숴지고 사라지니까 공하다.'  이렇게 생각으로 여기는 게 아니고 

단단함 이대로가 공한 감각의 산물이며, 이미지임이 보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누가 공하게 보지 말라고 해도 절로 그렇게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고통이나 걱정 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은 공한 내 생각과 감정이 

그런 무거움, 두려움을 잠깐 만들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분별 인식하는 것 뿐인데, 

나는 그 과정과 실체를 보지 못하고 본래부터 공한 자신의 육진 번뇌(마음)에 자꾸

속고 마는 겁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깨어나시려면 한번 스스로 자기 눈앞에서 내 몸과 이 세상이 다 

이런 존재 방식 속에 있음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보고 알아차리셔야 합니다(정견). 

모든 게 다 이렇게 보이게 된다면 과연 그땐 이 자리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이걸 '이것'이라고 하기에 깨어나면 '다 이것 뿐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중간 과정일 뿐 아직 끝은 아닙니다. 

왜냐면 이것도 아직 '모든 게 다 이것'이란 자기 생각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참나는 육근, 육경, 육진 번뇌 이 모든 걸 다 만들고 진리조차도 이것이라고 

인식 분별하는 바로 (몸 마음이 아닌) 그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입니다. 


​본래 면목인 참나는 때론 '무아'이기도 하고 때론 '유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 다른 한 쪽을 없애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참나는 유(색)와 

무(공)란 생각 분별도 하고 체험도 하지만,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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