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은 ‘나란 현상의 있음’이며 때로는 ‘나 없음’이기도 합니다.
O은 규정할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니나, 동시에 모든 것이 다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O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생각 속 분별입니다.
있다, 없다하는 것도 다 생각이 만든 미세한 분별입니다.
우리가 생각함 없이 O을 표현하고 가리킬 수 있을까요?
그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O에대한 모든 생각은 다 분별이란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있는 그대로의 O 바로 그것을 체험하겠습니까?
그냥 무심으로 가만히 있으면 이미 그것(O)입니다.
하지만 무심을 아무것도 없어 일체 다 사라진 상태라 오해하진 마세요.
생각이 일체 사라져 비어진 마음이라 분별하지도 마세요.
생각 없음이 아니라 그 어떤 생각도 붙잡거나 머물지 않으면 곧 무심입니다.
세상의 일부인 몸과 마음을 붙잡고 나라고 여기지만 않는다면 그게 곧 무심입니다.
몸과 마음을 느껴도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대로가 O을 보는 것입니다.
O을 다른 말로 바꾸면 곧 부처요, 본질이며 그 안에 나타나고 사라지며 변해가는
모든 건 다 일시적 현상입니다.
일상속에서도 우리는 어떤 대상에 마음이 가 있으면 다른 대상은 거의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모든 대상은 다 존재가
아니라 매순간 순간 인식되는 찰라적 사건(event)에 불과함을 암시합니다.
그럼에도 의식은 매순간 순간 모든 대상들을 번개같이 오고 가며 그것이 어떻다는
분별을 만들어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즉 나와 세상은 모두 세밀하게
본다면 찰나에 드러난 상념과 느낌의 기억을 '관념 연속성'에 의해 계속해서 있다고
착각 분별한 결과로 신기루 환영같이 우리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것 뿐입니다.
이걸 ‘나는 개체 아무개다’란 오온 활동에 붙잡힌 마음(중생심)이라 합니다.
하지만 깨어난 이는 늘 모든 게 다 찰나에 상념 기억들이 연속해서 뇌리에 남아서
내 삶이란 마음 세계(명색)를 만들고 있는 영화 원리 같은 현실을 직관합니다.
그래서 본질인 O에 깨어나면 모든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겁니다.
나와 세상 모든 게 다 O 자리 안에서 생멸하는 육식 활동에 불과한 환영이니까요.
환영 이미지를 보고 그걸 실재한다고 믿는 걸 전도몽상의 분별심이라고 합니다.
즉 지금 눈앞에 뭐가 스스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보고는 그게 있다고 믿는 겁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마치 객관적 사실같지요.
하지만 그건 집단적으로 빠져있는 집단 최면 같은 겁니다.
이런 나와 세상의 실상을 스스로 보셔야 깨닫습니다.
그러니 내가 고통과 탐진치를 끊거나 싸워서 물리치는 게 아니라 단지 그들의
진짜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에 실상을 보고 환영에서 벗어나게 될 뿐인 거지요.
따라서 '본질에 깨어나면 현상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 깨달았는지를 점검하려면 이것만 자기가 체크해 보면 됩니다.
내가 탐진치란 마음 현상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는가? 꿈에서 조차 그러한가?
이것만 스스로 살펴보세요. 아니라면 아직 더 꾸준히 정견, 정사유를 하셔야 합니다.
O의 정신이 무의식까지 다 바꿔버릴 때까지 일생을 걸고 공부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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