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나 건물이나 세상이나 하늘 땅, 우주까지도 다 존재입니다.
하지만 석가의 가르침은 이 모든 걸 다 육식의 경험(사건)일 뿐이라고 합니다.
사실 존재라면 변하지 말고 그 존재가 계속 그대로 변치 않고 있어야 합니다.
크든 작든 계속해서 자꾸만 변해 간다면 그건 존재가 아니라 '존재 같은 현상' 이지요.
물질을 중시하는 우리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은 다 존재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만물의 실체를 보는 깨달음의 눈에는 모든 건 다 지나가는 '경험 사건들'일 뿐입니다.
석가의 가르침은 이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영원한 존재는 진리 단 하나 뿐이며
나머지는 몽땅 다 그 진리(본질)가 일으키는 현상(지나가는 사건)들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현상에서 진리(O)를 못 보면 영원히 현상 속에 갇혀서 헤매게 된다는 거지요.
이것을 육도 윤회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육도 윤회를 하며 지금처럼 고통받지 않으려면, 진리를 보고 그것과 하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비유하면 지금 금이긴 하지만 불순물이 많은 금이라 자꾸 제련해서
100% 순금으로 거듭나자는 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중생인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는 그 '있음'을 믿기 힘드니까 두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 존재로 여기고 쫒아다닙니다. 그러나 이게 신기루라서 아무리
열심히 쫒아다녀도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주지 못함은 누구나 경험으로 다 압니다.
지금 내가 존재라고 믿던 대상을 잘 살펴보면(이걸 정견이라 한다) 비로소 찰라적
현상들이 반복되어 기억됨으로써 마치 존재인듯 착각을 일으키는 것 뿐입니다.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당신의 친구부터 잘 살펴보세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일수록 그 얼굴이 많이 변해서 내가 기억하던 그가 더 이상 아님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이게 바로 모든 대상은 다 '지속되는 경험들'이란 사실을 증명합니다.
중생이란 말 자체가 ‘경험 사건들의 뭉치(덩어리)’란 말입니다.
즉 존재와 경험(사건) 사이에서 헤매는 영원한 방랑자와 같은 의식체인 겁니다.
의식은 자기 몸과 마음은 볼 수 있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인 자기 자신은 못 봅니다.
왜냐면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만 살아왔기에 정작 그걸 살려주며 운용하는 존재는
까맣게 모르는 겁니다.
그러므로 빨리 깨어나는 방법은 눈 앞에 모든 대상과 일들을 경험(사건)으로 보는
것 뿐입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경험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던 O'이 점차 감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O은 모든 현상이 비춰지고 일어나는 스크린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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