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무섭거나 두렵거나 고통스런 대상을 끝까지 못 봅니다.
그 이유는 생각, 감정, 느낌의 육식 활동이 2차 화살을 마구 만들어서 스스로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대다수는 힘들어서 중간에 눈을 가리거나 울거나 도망칩니다.
결국 자기 내면의 힘이 없거나 약해서 막강한 대상을 응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찔하거나 흥분되거나 분노가 치밀 때 우린 왜 쉽게 후회할 언행을 합니까?
그 역시도 순간적으로 솟아나 자기 내면을 휘젓는 충동적인 에너지에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악몽을 꿀 때도 우린 악몽을 조용히 똑바로 바라보질 못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평소에 마음 속에 일어나는 느감생을 침착하게 정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잘 보면 자기가 얼마나 빨리 자기의 내면에 솟아나는 느감생(느낌, 감정, 생각)에
자기 동일시를 하며 달라 붙는지가 서서히 보이실 것입니다.
이걸 계속 정견해서 느감생에 조건 반사적으로 즉각 자기 동일시를 하지 않는
횟수가 오히려 더 많아지면 사람이 변하고 바뀌기 시작합니다. 흔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지만 당신은 경이롭게도 그 예외적 존재가 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작업은 처음엔 참 진도도 안 나가고 쉽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게 자기 주인인 에고를 발견해 하인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무리 견성했다고 날뛰는 사람도 이게 안되면 오히려 일반 정상적인 사람보다도
못한 비 정상적 존재일 뿐이며 오히려 상식도 무시하는 궤변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치가 이러하므로 도(道)는 알거나 보는 게 아니라 내 에고가 변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변하지도 영적으로 성장해서 성숙해지지도 않습니다.
정견을 하면 할수록 가속이 붙어서 점점 더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마치 단단한 얼음도 상온에 꺼내 놓으면 처음엔 잘 안 녹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빠르게 녹아내려서 깨끗한 물이 되는 현상과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면의 힘을 키우려면 다 내가 해야하는 것 같지요?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정견만 계속하면 됩니다. 그 이후 모든 것은
전부 다 O자리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아직 O 자리도 모르거나, 그저 O 자리만 힐끗 본 반디불 같은 초견성
수준일지라도 그 빛이 점점 더 밝아지고 환해져서 저절로 O 자리가 보름달처럼 환히
떠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견의 공덕이며 무명의 암흑 속에서 구원의 빛을
찾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정견은 견성을 완성하더라도 지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하다 보면 나중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저절로 되고 있었음이 확인되니까요. 그때까진 중단없이 계속 하셔야 합니다.
이 공부는 하면 한만큼 그 경지와 지혜가 높아지지만, 안 하면 그 자리에 계속 머물게
될 뿐입니다. 처음엔 먼저 O을 본 사람이 방심해 "난 알아요" 하고 까불다가 나중에
뒤따라오던 사람이 오히려 그를 앞질러가는 경우도 많이 일어납니다.
즉 O을 봤다고 견성이 아니라 그건 반디불만 본 초견성(십우도의 견적, 견우)에
불과하므로 절대 자랑질하거나 까불며 나서질 말고, 오히려 더 하심해서 꾸준하게
묵묵히 정견해 나아가셔야 합니다. 이것이 내면의 힘을 자라나게 하는 유일한 길
입니다. 명상이나 참선보다 더 이 길이 훨씬 더 수승하고 효과적인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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