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는 죽는 게 아니라 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2026.07.25.)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 사단법인 피올라

에고는 죽는 게 아니라 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2026.07.25.)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김연수 교장선생님의 나를 깨우는 아침 명상글입니다

법인

에고는 죽는 게 아니라 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2026.07.25.)

관리자     0건    2회    26-08-20 19:59

모든 종교에는 개체 나의 마음이 변하는 회심(悔心)이 일어납니다. 

즉 과거엔 개체 나의 행복과 평안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 진리를 만나면서 그런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개체 나(에고)의 행복과 평안보다 더 소중한 걸 자각하면서 

에고의 절대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내려앉게 되는 겁니다.


종교나 수행 단체들에선 ‘에고가 죽어야 한다’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만 현대인의 

삶을 고려하는 현대 선측 면에서 본다면 에고가 죽는다기 보다는 그 절대적 위치를 

진리에게 기꺼이 내어드리고 자기 스스로의 본질과 한계를 자각하면서 아래로 

물러나 진리의 종(從)역할을 기꺼이 자청하여 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사셨던 그 당시에도 64 외도(外道)라는 많은 수행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고행과 명상을 수행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에고를 

이기려면 에고가 싫어하는 고행을 해야 절대 신인 브라흐만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때문이며, 고행이 싫다면 그 대신에 탐진치를 일으키는 번뇌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고요함과 평안함을 지향하는 명상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이런 공부들에 실망하신 궁극적 이유는 이런 공부 법들은 결국 

자기의 이익과 평안함을 구하는 것이지, 인간이란 현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석가가 발견하신 해탈 법은 삶의 고통과 생사 문제를 해결

하려는 자신에게 ‘나는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 결국은 무명(無明) 속에 여전히 

머물면서 그 안에서 행복과 평안만을 구하는 기술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명상에서도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계속되어 내려옵니다.

그래서 고통의 원인을 ‘알아차림’과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마음 챙김’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행은 대승 불교의 참선 문화에 있는 본성 발견을 위한

탐구와 ‘이 뭣꼬”와 8 정도의 ‘정견’ 관법과는 큰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에서는 에고가 에고를 위해 가장 좋은 수행 법을 행하고 평안과 

지복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길래 명상은 번뇌나 역경계와 정면 대결을 

하지 않고 회피합니다. 설사 정면 대결을 해도 번뇌나 역경계의 정체를 정면으로

보고 아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결국 명상은 에고가 제 1인자의 지위에서 내려오질 않습니다.

설사 생각, 감정, 느낌이 좀 멀어졌고 평안함으로 충만하다 해도 실은 그것들이 

교묘하게 평안과 지복감으로 변해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정견을 통한 

‘이 뭣꼬’ 관법은 나의 연기적 실체와 환영성(무아)을 보고 깨어나게 합니다.


현대에 들어와 명상은 이제 완전히 불교의 일부로 변하고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소승의 '위빠사나'와 대승의 '이 뭣꼬?' 수행은 전부 다 그 기본이 12 연기에 

입각해 8 정도를 삶에서 실현하기 위해 그 출발 시작인 정견(正見)을 같이 공유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소승도 기초는 '알아차림'으로 시작하지만 깨달음으로 

이어지려면 찰나 찰나에 그 알아차림이 끊어지지 않아 결국 '앎'의 O이 되어야 합니다.


즉 어중간하게 알고 끊어지고, 또 알고 끊어지고 하는 명상만으론 안되는 겁니다.

왜냐면 그 속엔 에고가 여전히 제1의 주체 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정견 관법에서는 나란 생각과 느낌의 조합임이 발각되므로 나란 결국 연기적으로 

생겨나 있는 [무아]임이 드러나는 거지요. 그래서 대승에서는 에고가 제 1의 자리를 

잃고 진리인 O에게 양보하고 밑으로 내려와 종의 역할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정견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게 쉽사리 되어지진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겐 먼저 명상이 전 단계로서 필요하지요. 명상으로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만치 정견을 하기가 쉽게 되니까요. 하지만 본래 명상은 그 위치에 있는 겁니다. 

모쪼록 공부하시는 분들께서는 이런 깊은 이치를 잘 보시고, 멀리 길게 내다보며 

공부를 해나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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