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존함 속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생각 감정이 지금이나 과거에 대해 해석 분별할 때만 그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마음이 에고를 만드는 존재 방식 또는 개인적 기억이라고도 하지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존을 체험할 때, 마음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면 뭔가를 분별 조작하고 각색해서 이야길 만드는 작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는 항상 순수한 의식이 펼치는 생생하고 경이로운 체험의 연속이라서
생각 감정이 먼저 작업해야만 생겨나는 마음은 들러붙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허공에 접착제로 뭘 붙이려 해도 전혀 불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만드는 이야기가 주인공을 필요로 할 때 에고가 탄생합니다.
에고는 마음 속 이야기를 실제로 착각하지만, 에고가 작동하지 않을 때에도 순수한
의식은 스스로 빛나며 존재할 뿐 어떤 기억이나 이야기 안에도 머물지 않지요.
그러므로 마음이 상처로 고통받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끌어내 되십고 있는
주체인 에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늘 과거의 기억과 이야기를 필요로 하며
그걸 좋다, 나쁘다 해석 분별하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중생은 뭔가 분별하길
마치 스포츠처럼 즐기는 게 일상처럼 되어있지요. 그 결과로 오히려 마음의 상처로
고통이 생겨나는데도 그걸 아직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겁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의식 스스로를 자각해서 초점을 맞추는 걸 말합니다.
깨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의식은 자각을 잊은 채 육식 활동의 분별 작업이나 돕고
있습니다. 이걸 의식이 정신을 아직 못 차린 상태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의식이
스스로에 대해 깨어 있으면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다 알아차립니다.
사실은 이게 우리들의 본래적 상태인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든 일에서 계속 해
이야기를 만들며 상처를 계속 받고 있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 받을
사건을 선별해서 그걸 붙잡고 소처럼 되새김질 함으로써, 자기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고는 살아남고 마음은 강화됩니다.
분명하게 깨어난 사람은 이런 마음 속의 소동을 일어나는 순간, 즉시 보고 압니다.
하지만 아직 그 힘이 약한 사람은 반 쯤 고통 받다가 문득 깨어나 늦게 알아치립니다.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남의 언행에 대한 이야기 속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의식의 종이 되어 있다면 마음은 의식을
과거나 분별 속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설사 필요해서 잠시 이끈다 해도 의식은 그 마음의 환영성을 늘 보고 있기에, 주인과
종이 뒤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깨어날수록 상처로 고통 받는 일은 없습니다.
동물과 인간, 신(부처)은 똑같이 다 생명 현상들이지만 차이는 그 마음 속 내적 혼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나눠질 뿐입니다. 정말 우주의 법칙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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