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식은 본래 모습이 없이 텅 비었으므로, 정신과 의식을 깨닫는다는 말이나
허공을 깨닫는다는 말이나 사실 똑같은 것입니다. 왜냐면 의식이 허공을 의식할 때
거기엔 허공과 의식이 둘이 아니게 되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은 단어마다 제가 생각으로 해석 규정해서 부여한 나름대로의 주관적
규정과 범위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스스로 속아서 자꾸 다르다고 분별합니다.
여하튼 그런 생각의 영역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O을 제대로 빨리 깨닫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O을 깨달았다고 할 일을 다 마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말에 속으시면 안됩니다.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이기 때문이지요.
본질(본래 마음)은 무심이지만 현상(개체 마음)은 평상심과 같은데, 무심은 본래
텅 비어 아무것도 없지만 평상심은 바다의 파도처럼 끝없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상심이 도”란 유명한 말이 있지요.
하지만 이 말뜻은 흔들리든 말든 평상심을 텅 빈 무심으로 보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리되면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나란 현상을 통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우리들에겐 평생이 걸려서 해결해야 할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허공을 깨닫긴 쉽지만 허공이 되긴 어렵다”란 말도 있는 겁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해 “진리를 알지만 말고 완전하게 하나가 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선방(禪房)에 “깨닫는 데 일 주일이면 보림은 평생”이란 말이 있는 이유도 이겁니다.
여기로부터 비로소 [삶이 있는 그대로 공부다]란 말이 성립되지요.
지금 역경계를 맞이하여 힘드시다면 대혜종고 선사의 말처럼 “그 속으로 흔들리지
말고 의연히 들어가 두려움 없이 지켜봄으로 존재하라. 그러면 그 역경계는 반드시
본래 공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말것이다.”를 일상에서 실천 수행하셔야 합니다.
O을 봤다고 역경계가 알아서 사라져주진 않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오히려 더 치성하게 설쳐댑니다. 지켜보는 힘이 더욱 더 예민해지니까 당연히
그리 되지만 그럴수록 눈을 부릅뜨고 역경계의 정체를 지켜보며 정견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하늘이 본래 밝고 푸른 채 텅 빈 허공임을 잠깐 봤지만 그렇다고 구름이 다
사라져주는 건 아님과 같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생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구름을 없애려들지 말고 있어도 구름의 본래 생멸하는 허망성과 공성을 분명하게
보면 되는 겁니다. 그게 진짜 살아있는 하늘 상태 그대로지요.
이것을 "평상심을 있는 그대로 둔 채라도 늘 무심하다"고 합니다.
바다는 늘 표면에는 파도가 치지만, 바다 전체가 흔들려 움직이는 일은 없듯이.
설사 1~ 8식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해도, 그 현상을 일으킨 9식은 늘 고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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