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난 왜 이렇게 부족하고 무능할까?
내 삶은 왜 이렇게 힘든 일만 생기고 우울할까?
저 이는 왜 저럴까?
우리 가족은 왜 나를 힘들게만 할까?
난 언제쯤 이런 삶을 훌쩍 벗어나 행복해질까?
이런 생각들 해보셨지요?
하지만 못나고 부족해도 다 괜찮습니다.
왜냐? 이게 다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라 환영이며 가짜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 생각 속에서 그 생각에 크게 영향받으며 삽니다.
이처럼 제가 만든 생각이 자기만의 주관(마음) 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중생은 누구나 그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머리론 알아도 정작 자기 현실에선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왜냐면 자기 생각이 “이게 내 현실이야!”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견상(見相)만 하다 인생 끝난다고 합니다.
견상(見相)이란 내 생각, 감정,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동일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견상(見相)하는 작용을 일으키는 성품 자리를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하는 거지요.
왜 견상(見相)만 하는 삶이 번뇌 망상이냐면 그게 다 자기 주관적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견상(見相)만 하면 좋은데 꼭 생각이 분별해서 댓글을 달거든요.
중생은 이 댓글을 절대적 진실이며 자기 현실이라고 굳게 믿으며 삽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이 만든 자타에 대한 평가 분별은 다 견상(見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견상(見相)은 전부 다 나만의 분별 망상이며 꿈같이 허망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와 세상에 대한 견상(見相) 분별이 곧 '나(너)는 어떻다'라는 아상과
이야기라는 객관적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명(無明)이라는 겁니다.
견성(見性)을 해야 비로소 참 자기를 발견하고 알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모두 생멸하는 꿈같은 가짜 나를 붙잡고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겁니다.
견성(見性)하지 못하면 무명 업장 속에서 견상(見相)만하다 가게 됩니다.
일체가 다 내 생각(견상)임에도 그걸 몰라서 독박으로 고통받는 겁니다.
견성(見性)한 후에야 바른 견상(見相)을 하게 됩니다. 실상을 보는 거지요.
그것을 법안(法眼)이라고 합니다. 실상의 진리(법)을 보는 지혜의 눈을 비로소
떴다는 겁니다. 법안은 나와 세상을 다르게 하늘나라(불국토)로 보이게 합니다.
더 이상 집짓는 자(생각)는 힘을 쓰지 못하며, 긴 꿈에서 깨어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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