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明)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마음공부의 기초에 무척 중요합니다.
무명(無明)이란 뭘까요?
글자 그대로는 ‘밝지 못함(어둠)’이라고 해석됩니다.
한마디로 뭘 봐도 그 실상과 진실을 밝게 알아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볼 눈이 없기 때문이며, 진실을 알만한 깊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마음의 눈(혜안과 법안)이 밝아지려면 우선 두 가지를
바로 보고 깨어나야 하는데 그 두 가지란 ‘연기(緣起)와 본래 성품(법신)’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꽃이 하나 피어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그 꽃이 혼자서 그렇게 잘 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 꽃이 피어난 현상이 있기 위해선 흙과 물과 태양, 그리고
벌과 나비가 있어야 합니다. 즉 꽃은 대자연 속 모든 것들(전체성)과의 관계 속에서
절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적 하나로서 잠시 나타나있는 것(현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이렇게 거대한 연기(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여기에 예외로 혼자 독불 장군처럼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무수한 조상 때부터 딱 바로 그 사람들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대자연이 도와준 관계가 없었더라면 오늘 지금 여기의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도 “하나님은 너희들 속에, 너희들 사이에 이미 와 계신다(누가 17장
20~21절)”고 말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곧 연기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너와 우리가 없다면 그 연기와 관계적인 나도 없는 겁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혼자라 외롭다고들 하지만 진실은 우리는 모두 다 이 장대한
우주 전체와 더불어 같이 살아 움직이시는 미지의 그 어떤 힘과 섭리에 의해 마치
벌판에 자라나는 꽃과 나무들과 똑같은 원리로 지금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겁니다.
즉, 이 대자연 안에서 어느 누구도 따로 분리된 외로운 생명은 원래 없으며 우리는
이 위대한 연기법과 그를 움직이는 알 수 없는 힘(섭리)의 열매(나타남)인 겁니다.
그래서 서로 한덩어리의 운명 공동체인 생명 현상들끼리 사랑하란 거지요. 이러한
이치를 모르니까 너 따로 나 따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외롭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실상을 몰라서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요, 무명(無明)인 것입니다.
그런데 연기는 각 개체들끼리 혼자서 관계함 속에서나 작용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물질체들은 사실은 입자로 나타난 파동들이며, 그 파동이란 곧 우주 대생명이
모든 연기 관계들 속에서 각각의 인연과 조건에 맞게 창조 행위를 함으로서 그 결과로
나타난 (일시적으로 분리된 것처럼 착각되어 보이는) 입자 형상들이란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입자)들은 사실은 원래 비존재(파동)이며, 동시에 모든 존재와
비존재 현상 사이에서 끝없이 순환 반복되며 오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원한
무엇(= 우주 정신의 활동, 생명 법신)자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속에서 일시적인 존재 현상으로 나타나 있는 우리들도 한시바삐 각자의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모든 우주의 존재(입자)들을 창조하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며 숨바꼭질하고 있는 실상인 나의 진짜 정체를 바로 보고 깨어나야 합니다.
즉 무명이란 '연기와 본성'을 바로 못 봐서 생겨난 마음의 혼란을 가리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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