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오딧세이]란 영화가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집으로 돌아오는 ‘몸과 마음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것이지요.
성경과 법화경에도 집나간 아들의 오랜 방황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깨달음으로 가는
길도 이와 똑같이 무서운 유혹과 위기로 점철되는 험난한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표류하다가 칼립소라는 바다의 요정에게 구출되나
기억을 잊게 만드는 로토스를 먹고 지내다가 문득 [나는 누구인가?]를 회상하고
깨어나서 돌아오게 됩니다. 까맣게 잊있던 귀환의 여정을 다시 계속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영화가 영적 구원(깨달음)을 향한 인간의 삶을 기막히게 상징하는 내용이라
보면서 참으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과연 무엇이 주인공을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신들은 되려 벌주고 방해하기만 했는데도.
저는 그 힘은 오디세우스의 ‘오직 돌아오고자 하는 굳센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의지를 빼면 나머진 다 고통 속에 있지만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가르침
대로 운명에게 전부 내어맡긴 여정이었습니다. 결코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하자”
해서 길을 찾아 돌아온 게 아니란 점입니다. 마음공부도 완전히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의 길은 결코 내가 어떻게 해서 되는 공부가 아닙니다.
무위의 진리를 유위법으로 노력해서 깨달을 순 없기 때문이지요. 깨달음은 오로지
유위의 생각, 감정, 감각 느낌인 나와 내 것의 환영성을 지켜보고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지속할 때 가능합니다. 보이는 것은 저절로 보이니 무위법이기 때문입니다.
돈과 쾌락, 명예욕 등은 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드는 약인 로토스입니다.
물론 당신은 살아오면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때론 행복해하고 때론
큰 고통과 좌절 속에서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번뇌 속에 슬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본질은 결국 이 여정에선 꿈에 지나지 않는 환영들입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그런 꿈속의 것들에 연연해하거나 상처받으며 헤매려고 합니까?
우린 한시바삐 [나는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아니면 오디세우스처럼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곳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지금 뭣이 중한디?"를 바로 보고 깨어나는 게 바로 정신차리는 것입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속삭입니다.
“결코 네가 어쩌려들지 말고 다 신에게 내어맡겨라. 그러면 그 손길을 느끼리라”
이것은 너는 그냥 무위로만 있으란 가르침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무위의 눈길로서 나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존재하는지를 계속해
지켜보세요. 이것이 8 정도를 출발하게하는 정견(正見)입니다. 정견하면 할수록
당신의 내면에서 모든 역경과 번뇌가 꿈(환영)같은 이미지들에 불과함에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지켜보기만 했는데 내가 모르는 가운데 O이 깨어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자각몽 속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강화하면 꿈이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도리를 어떤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나 있을까요?
세간법에선 무위는 가장 무능한 길이지만 출세간 법에서는 가장 수승한 길입니다.
절대 일시적 현상인 생각, 감정, 느낌을 본질인 양 붙들고 자기 동일시하지 마세요.
단지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냥 꾸준히만 하세요.
악몽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길은 악몽인지 실제인지 계속 지켜보는 것 뿐입니다.
그러면 내면의 눈길이 힘을 얻고 새로운 시야가 열리면서 혜안과 법안이 열리게
됩니다. 새로운 눈길로 본다면 나와 세상이 전혀 새롭게 보이는 건 당연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도 말하는 '돌아온 탕자'의 [영적 거듭남]인 것입니다.
결코 생각과 느낌으로 정리하고 정리하고 이해해서 아는 것만 따라가지 마세요.
이 공부는 세상 공부와는 정반대로 해야만 성공합니다. 이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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