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밖으로 나와라(2026.05.08.)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 사단법인 피올라

몸과 마음 밖으로 나와라(2026.05.08.)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김연수 교장선생님의 나를 깨우는 아침 명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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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밖으로 나와라(2026.05.08.)

관리자     0건    12회    26-08-16 06:08

‘몸과 마음 밖으로 나오라니 유체 이탈하란 말이냐’고 생각하진 마세요.

우린 그동안 제 몸을 나라고 여기고(생각), 몸이 마음(생각, 감정)을 쓰며 산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깨어나 보면 세상 전체가 다 나이며 내 마음입니다.

사실 불교나 기독교나 핵심은 전부 이걸 말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세상이 왜 내 마음이냐면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내 눈의 망막에 비친 영상들이며, 

들리는 것들은 다 내 귀를 통해 생명 정신이 듣는 소리이며, 느끼는 것들 역시 모두 

내 피부 감각 기관들을 통하여 느껴지는 감각인 정신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몸 속에 생명 정신이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갓 죽은 송장 시체는 생명 정신과 분리되었기에 몸은 멀쩡해도 마음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나는 본래 정신(순수 의식)이건만 그게

육식 감각 기관을 통해 만드는 생각, 감정, 감각을 자꾸 자기로 여기니 문제인 겁니다.


생명 정신은 본래부터 몸과 마음 밖에 잘 있습니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는 것부터가 생명 정신의 활동아닙니까?

또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도 생명 정신의 활동아닙니까?


그러므로 ‘부모 미 생전 본래 면목’이란 바로 몸과 마음(특히 생각)에 꽉 붙잡힌 

우리의 마음 패러다임(에고)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생명 정신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저한테 누구때문에 괴롭다든가 상처를 받았다거나 또는 

그들은 왜 그러냐고 불평하거나 힘들어합니다.


깨나보면 그건 다 ‘난 아직 내 마음(생각 분별)속에 갇혀있어요’란 고백 밖에 안되는

에고의 푸념이자 시비 분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는 이유는 살아온 업습에 

붙잡혀서 마음(생각)이 ‘누가 옳으냐?’, ‘뭐가 맞냐?’만 분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상대가 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자기 마음의 모습인 줄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그렇게 비판하며 시비 분별하고 있으니까요. 깨어나면 그런 상대보다 먼저 

상대를 그렇게 바라보며 체험을 육식으로 창조하는 자기 마음이 먼저 보입니다.

그러니 상대가 그렇게 보인다면 그건 바로 자기가 공부할 거리가 되는 겁니다.


내가 너랑 수준과 차원이 다르면 싸움이나 갈등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가 어떻게 보인다는 것은 곧 내가 바로 그와 같은 파동의 수준이라는 겁니다. 

밝게 깨어날수록 상대의 문제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으며 이 상황에서 

어떻게할 것인가부터 먼저 보입니다. 이걸 자유, 사랑, 지혜라고 하는 겁니다.

먼저 상대의 언행으로부터 자유로와야 그 다음에 사랑과 지혜도 나올게 아닙니까? 


그렇길래 상대가 날 비난해도 성처받는 게 아니라 "그래. 그런 점이 있을지 몰라.

앞으로 더 잘해볼께." 하고 씩 웃어보세요. 그럼 상대가 더 이상 어쩌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실망스럽다면 그를 탓하며 시간 낭비 말고  [너나 잘 하시면] 됩니다. 


왜 타인에게 가서 그들의 못난 점을 전하거나 비난합니까? 

남들이 보면 그런 수준에 괴로와하며 불평하는 자기는 또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진리는 맞고 틀리는 것도, 선하거나 악한 것도 다 아닙니다. 어떤 시공간에서는 

선한 게 다른 시공간에선 다르게 됩니다.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제자가 예수에게 베다니의 마리아를 비난하자 예수가 

오히려 ‘네 선악의 기준은 네 수준에서나 그런 것이다’란 취지로 나무라십니다.

여러분, 제발이지 자기 선악의 기준과 옳고 그름에서 좀 벗어나세요. 당신은 얼마나 

옳고 선하길래 그렇게도 남을 자기 눈으로 시비 분별하며 인생을 낭비합니까? 


그게 바로 자기의 눈을 덮은 들보이며 그것을 보고 빼어내야 자기 몸과 마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통 안에 들어가서 통을 굴릴 때와 통 밖에서 굴릴 때, 어느 때가 

더 쉽겠습니까? 당연히 통밖에서 굴리는 게 훨씬 쉽지요. 이와같이 몸과 마음 밖에

나와 있어야 자기 몸과 마음을 더 잘 보고 자유롭게 굴릴 수 있게 됩니다. 상대를 뭐라

생각으로 규정하고 시비 분별하는 순간 당신은 그 생각에 이미 붙잡혀버린 겁니다.


제 몸과 마음 밖에 나온다면 그게 바로 출애굽기 3 장 14 절에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됩니다. 정견 명상을 통해 분명해지는 [봄+앎] 자리도 바로 

‘스스로 항상 있는 자’가 아닙니까? 왜 알기만 하고 진짜 되지는 못하십니까? 

'너의 생각을 벌레보듯이 하라' 제가 이런 새로운 격언이라도 하나 만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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