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나 석가나 한결같이 자유와 해탈을 말합니다.
해탈 역시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남이니 자유함이지요.
하지만 진짜 자유함으로 가는 길은 따로 어딘가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가 이미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이미 자유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밖에서 자유와 해탈을 찾는다면 잘못된 게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는 자기를 이미 뭐라고 잔뜩 한정(규정)해놨기 때문에
그 생각에 속박 되어 이젠 자유할 수가 없습니다.
걱정 근심을 할 자유가 있다면
반대로 걱정 근심을 안 할 자유도 있으며,
걱정 근심 속에 머무를 자유가 있다면
반대로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 있을 자유도 있습니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지만 우린 그렇게 자유롭게 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린 그동안 너무 논리적 합리적인 생각에만 빠져서 살았기에,
이젠 이유 없고 조건 없는 비 논리적인 자유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그냥 '이유 없이 자유'하면 되건만,
우리는 자기 생각에 또 빠져서는 “어떻게?”를 묻습니다.
어떻게란 말은 논리와 합리성을 가진 적절한 단어의 배열을 보여 달라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논리와 합리란 이름의 '보이지 않는 밧줄' 아닙니까?
알렉산더 대왕처럼 그 밧줄을 단칼에 끊고 지금 즉시 그냥 자유하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떤 건 그리하면서, 어떤 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생각 속에서 '이건 되는데 저건 안 되고'로 규정해놨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규정해서 스스로를 속박하면서 왜 남에게 "어떻게?"를 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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