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다는 것은 생각 이전의 [이것], 즉 본래 성품(O)을 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당장 떡 하니 보이는 것은 아니고 처음엔 감을 잡아야 합니다.
O에 대한 감을 잡은 걸 화살표(->)라고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이것]이 감을 넘어서 점점 더 커지면서 [(있는)듯]하게 있게 됩니다.
왜 이런 표현을 쓰냐면 있다며 붙잡는 순간 홀연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없다며 돌아서는 순간 다시 있는 듯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육식이
그 내용물과 그 본질(재료)인 O의 경계 사이에서 생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파도가 바다의 표면에서 솟아 올랐다 가라앉으며 숨바꼭질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서 딴 거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지 말고 꾸준히 [감]과 [듯]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힘이
모여 마침내 O을 보여주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이게 깨어남이지요.
그럴려면 대충이 아니라 의문심을 가지고 자세히, 꾸준히 지켜봐야 합니다.
그걸 [이 뭣꼬?]가 가진 의단(疑端; 의심의 날카로운 끝)이라고 합니다.
[이 뭣꼬]라는 생각으로 모인 의심의 방향성 자체가 사실은 살아있는 의단입니다.
그 의심의 힘이 모여서 송곳의 끝 같은 초점을 만들어 유지하면 됩니다.
이렇게 그 초점에 정신의 힘이 모이면 그게 살아 움직이는 게 보이기 시작하며
감(感)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 감이 생생해지면 이게 마치 살아있는 에너지나
투명한 의심(의식)의 덩어리같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물질처럼 딱 눈앞에 나타나 있는 건 아닙니다.
어찌보면 있는 듯하고 달리 보면 없는 환각과도 같습니다. 이게 [듯]입니다.
이럴 때 욕심나서 의도적으로 그걸 키우려 하면 상기병이나 눈병이 납니다.
수행자들이 매우 조심해야 할 대목입니다. 힘 빼고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지만 꾸준히 지속적으로 집중 정견해 나가면 점점 더 O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마치 구름에 가렸던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이, 허공이라고
생각으로 이름 붙이고 그렇게만 믿고 알았던 눈앞의 허공이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온 세상과 나조차 대상으로 인식해 있게 했으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O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견성'입니다. 물론 이때는 모든 게 하나인 이자리
품안에 안기게 되므로 O이 곧 봄이며, O이 곧 앎이며, O이 살아있음입니다.
물론 살아온 업습이 쉽게 물러나진 않으므로 중간에 많은 장애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기 때부터 2000 번 쓰러지며 마침내는 일어서 걷기를 배웠던
2000 번 도전 정신이 있습니다. 이 정신으로 꾸준히 말없이 나아가면 됩니다.
아무리 두꺼운 먹장 구름이라도 언젠간 비를 좀 뿌린 후 사라질 것입니다. 그 비를
시원하게 맞으며 오히려 성장해 보겠다는 용감한 도전 정신만 있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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