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았다는 말은 항상 불이법(不二法)을 본다는 것입니다.
불이법을 본다는 것은 모든 걸 볼 때 그 대상과 주변이 둘로 나눠지기
이전 자리와 분별을 통해 둘로 나눠진 이후가 같이 다 보인다는 말입니다.
중생심은 모든 걸 나눠서 따로 있다고 보는 분별심(생각)때문에 육식 경계에
계속 빠질 뿐 그 이전 자리인 [봄+앎]이 항상 되어있지를 못하므로 모든
대상들이 둘이 아니게 보이지 않고 이것과 저것, 너와 내가 다 따로 있다고만
여겨지지만 깨어난 이는 늘 [봄+앎]이 되어있기에 모든 게 나눠지기 이전 상태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정신의 초점(존재 중심)이 늘 [봄+앎]에 먼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시작하면 컵과 내가 둘이라고 생각으로 분별 인식하기 이전의
자리(평등지, O)부터가 확연히 보이므로 자기는 늘 전체심이 되어 살아갑니다.
사실 생각이 개입해서 명색(이름과 모양)을 분별해 둘로 나누기 이전 자리에는
전체가 통째로 한 덩어리로 살아있는 우주 의식(대생명)인 O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봄+앎]의 기능과 능력을 가지고 내 몸을 포함한 모든 대상들을 두루 다
보고 인식하는 겁니다. 육식 활동은 그 바탕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지요.
즉 정신(순수 의식)의 초점을 일체의 삶을 보고 아는(경험하는) [앎]에 늘 둔다면
저절로 항상 불이법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둘로 나누는 생각, 감각은
그 [앎]의 투명한 의식 앞에서 일어나는 그 다음의 육식 활동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봄+앎]만이 켜져있는 자등명의 상태에선 아직 생각이 작동하지 않아서
모든 게 통으로 한 덩어리처럼 아직 분별로 분화(分化)되기 이전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컵=나=책상=음식=감정=생각=감각=맛=풍경이 되는 거지요. 다시 말해
모든 게 다 정보로서 아직 주객으로 분별되기 이전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항상 불이법을 본다면 그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당신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즉 늘 [봄+앎]으로서 깨어있다면 모든 게 다 평등한 대상일 뿐이란 말입니다.
생각과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은 내가 [봄+앎]의 자리에서 불이법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럴 땐 반드시 나란 생각의 관점 속에 빠져있지요.
그래서 고통과 걱정근심이 나를 휩쓸고 지배하는 겁니다.
만약 내가 항상 [앎]의 자리가 되어있다면 어떤 생각도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모든 게 다 내[봄과 앎]의 대상일 뿐 아직은 내가 되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걱정 근심은 오직 내가 방심하거나 허락할 때만 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무엇이 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붙잡고 나와 자기 동일시할 때입니다.
저는 지금 무슨 특별한 이론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실이 이렇다는
내면의 진실을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항상 [봄과 앎]이 되어있다는 것은 곧
불이법을 보고 있다는 말이며, 응무소주 이생기심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와 세상, 모든 일들을 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인간 마음에서 벗어납니다.
인간 마음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부처(佛)와 신(神)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마음 때문에 분별심 속에서 계속 윤회심 속에 뒹굴며 살 뿐입니다.
당신은 본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경험하는 우주 생명 의식임을 잊지 마세요.
자기가 본래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에 지금 아무거나 막 되어보고 있는 겁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사세요. 왕이 하인이나 노예가 되어서도 정신을 못 차리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