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열을 내기도 하며 컴퓨터와 기계들을 움직이는 힘은 전기의 작용 기능이지
그 자체가 전기의 본질은 아닙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 질투하지 아니하며
자랑하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지 않은 것 역시 사랑의 작용 기능일 뿐이지
그런 것이 사랑의 본질 자체거나 전부는 아닙니다.
21 세기에 우리는 전기와 사랑의 무한한 능력과 효용을 아직도 다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 법신(제 9 식)의 무한성도 잘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단정(규정)함으로써 스스로 교만하고 어리석게 됩니다.
여러분이 생명과 마음이란 단어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이 아십니까?
게다가 이 말들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 달(진리,실상)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가 그동안 배우고 알아낸 것만을 전체 정보라고 착각합니다.
이런 사람을 미지(암재계)의 새로운 세계와 진리에 닫힌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공부가 느린 사람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이런 '다 안다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자기 생각(꾀)에 자기가 넘어간다고도 말합니다.
자기 생각에 자기가 넘어가는 어리석음은 자기 생각과 자기를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합니다. 깨어나려면 먼저 자기의 이런 습관적 문제를 정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의 육식 활동(생각, 감정, 감각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1~ 5 식(보고 듣고 냄새, 맛, 느낌)과 그를 분별하는 6 식(생각)은 제 7 식(나)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제 7 식(에고적인 의식 활동)은 육식 활동을 자기 동일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생각은 이렇게 1~ 5 식과 7 식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이모든 것들을 다 작용과 기능으로서 일으키는 본질은 제 9 식(생명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제 9 식이 자연히 드러나도록 하려면 그 어떤 육식 활동이라도 예외없이
자기 동일시 하질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냥 ‘있는 그대로’ 마주함입니다.
1~ 7 식과 자기 동일시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본래인 제 9 식이 드러납니다.
1~ 7 식과 자꾸 자기 동일시함으로써 생겨난 것이 잠재 의식(제 8 식)입니다.
그냥 그랬을 뿐인데 흘려보내면 될 것을 자꾸 6 식(생각)은 의미를 부여하고
인과법(因果法)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결과 윤회와 고통이 반복되는 겁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1~ 7 식의 오남용(誤濫用)이라고 말합니다.
약도 오남용하면 오히려 독이 되듯, 육식 활동도 오남용하면 번뇌와 무의식을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고통과 부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이걸 생각 중독증 환자라고도
말합니다. 자기 생각과 끝없이 자기 동일시하다 보니 미처 9 식의 밝은 빛이 드러날
빈틈이 없는 겁니다. 그 결과는 자기만의 닫힌 정보 세계 속에만 갇혀있는 겁니다.
빨리 그리고 활짝 깨어나려면 일체 모든 생각, 감정, 감각 느낌에 자기가 갖다붙인
생각(규정, 이름 tag)에서 한시 바삐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일상의 1~ 6 식활동에
지배 규정당하는 삶이 종식되고 거듭나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젊었을 때 유체 이탈을 하고 나서 다시 몸 속에 의식이 들어와보니 그 다음
2~ 3 주는 1~ 5 식이 주는 오감의 느낌과 체험들이 그렇게 신기하고 감사하며
생생하고 찬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몸도 너무나 감사한 생명의 도구였구요.
하지만 6 식의 장난(규정하는 습관)질에 의해 그런 거듭난 삶은 곧 끝나고 말았습니다.
깨어나 보니 이 모든 게 다 생각의 규정질 때문이었습니다.
생각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과거 정보에만 매달리는 생각을 무작정
자기 동일시하거나 한 방향으로만 오남용하는 게 문제라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모든 일(삶)을 일어나게 하는 힘이 바로 제 9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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