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무엇)입니까?
당신이 이 삶의 많은 순간들 속에서 살아오며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와 같이
당신은 딱 하나로 고정되어있는 몸이나 마음(생각,감정,느낌)조차 다 아닙니다.
왜냐면 이 몸과 마음조차도 자꾸만 변해가며 오래 머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행무상(모든 원인과 결과의 흐름은 영원하지 않다), 제법무아(모든
개체 현상 속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주인공)가 따로 없다)란 가르침도
있는 거지요. 이것이 진리의 특성을 설명하는 부처님의 삼법인입니다.
진정한 당신은 이모든 상황과 여건을 경험하고 있는 의식(意識)일 뿐입니다.
의식은 늙거나 변하거나 늘거나 줄어들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의식조차도 낮과 밤을 통해 생멸합니다. 이것은 의식조차도 궁극적인
실체가 아니며 이 의식을 투사하는 그이전의 것이 먼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을 생명법신, 또는 우주(대생명)법신이라하는 겁니다.
거울의 예를 들자면 거울의 표면에는 수많은 상(모습)들이 계속해 지나갑니다.
그러길래 모든 상들은 다 제행무상입니다. 그러니 그중에 그 어떤 것도 실체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제법무아가 되는 거지요.
그러나 모든 걸 비추는 거울은 자기는 못 비추지만 그러나 비추는 성품으로서
변함없이 모든 상들에게 오염되거나 더렵혀지지 않은 채 늘 스스로 여여하게
실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락아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지. 우주자연에 대한
불교의 관점은 ‘모든 건 다 양자의 활동’이란 양자물리학의 관점과 똑같습니다.
다만 이름을 ‘생명’이라거나 ‘양자 활동’이라고 다르게 붙이는 차이만 있지요.
식스존에서 배웠다시피 [나는 스스로 나라고 여기는 것]이 됩니다.
단순한 것은 즉시 되고 정교하고 복잡한 것은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요.
이것은 신이 가진 전지전능성과 무한창조성을 , 즉 당신의 실체(본성)은 영원한
우주 대생명이 잠시 연기법에 따라서 몸과 마음으로 나타나 자기의 창조 능력에
아주 심취해서 심각하게 놀아보고 있다는 진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젠 삶의 현장에 들러붙은 끈끈이가 되지 말고 상쾌하게 좀 떨어져
관조 정견해 보세요. 현대 미학자인 미셸 푸코는 “자기 삶을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보는 게 인생최고의 목표”라고 설파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무엇)입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지금 반드시 거창하거나 커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업을 해도 좋고 가정주부라도 좋으며 택배나 노가다를 해도 다 좋습니다.
핵심은 당신의 삶이 지금 무엇을 창조하며 그 창조를 통해 주변에 어떤 기쁨과
행복을 전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악취를 풍기는 큰 썩은 나무보다는 작은 향기를 내는 들꽃이 더 아름답지요.
크고 작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 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오늘 나의 작은 창조가 내일 이 세상에 그 어떤 큰 기여와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이러한 하나의 살아서 움직이는 거대한 삶 속에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체를 분별로 자꾸 나눠 대는 인간 아무개의 마음을 넘어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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