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도 생명력이 부모의 정자 난자를 움직여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죽는 것도 생명력이 육체의 장기들로부터 빠져나가기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조차 이것(생명력)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니 하물며
그 과정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9식인 생명력은 본질이며 나머지(1~ 8 식)는 다 현상에 불과한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나 현상에만 홀랑 빠져 살다보니 이젠 그게 전부인 줄로만
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탄생과 죽음, 유(有)와 무(無)도 생겨난 것이지요.
탄생과 죽음, 유(有)와 무(無)란 본질의 현상 변화에 우리가 붙인 이름입니다.
본질을 보는 눈을 뜨지 못했기에 우린 현상만이 전부인 줄로만 알며 삽니다.
하지만 탄생과 죽음, 유(有)무(無)를 포함한 모든 현상을 다 나타내고 보여주는
본질은 현상이 아니기에 보여주고 인식될만한 그 모습이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오직 본질이 살아있어 창조하고 나타내는 현상들일 뿐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과 생각 속에서 나를 창조하고 그 생각을 중심으로 살며
반복 패턴의 삶 속에서 잠재 의식을 만들어 갖는 것도 다 본질이 하는 겁니다.
즉 본질(9 식)의 일부인 6 식(생각)이 거듭되며 나(7 식)을 만들고 그게 삶 속에서
이런 저런 경험들을 거치며 좋고 나쁜 습관과 정보들을 저장해서 오히려 그런
경험 정보(8 식; 잠재의식)들이 이젠 오히려 나를 만들고 세상을 규정하며
자기 관점을 형성하는 것을 까르마라고 하지요.
그러나 1~ 8식의 모든 게 다 본질인 9 식이 만든 활동 현상이므로 삶이란 결국
‘닥치고 다 이것 뿐’이란 말로 정의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에고심(7~8 식)은 반복 습관과 착각 속에 기생하고 있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1~ 8식(특히 6~ 8식)의 환영 현상성을 늘 정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본질인 9 식(이것, 생명력)이 드러나도록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거꾸로 제 7식에 불과한 자기가 9 식을 공부해서 얻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꿈(생각) 속에서 방황하는 결과만 될 뿐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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