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는 결국 하나님,부처님을 깨치고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모든 종교는 그분들의 신성(Devine)을 높이 하면서 숭배하고 찬양하지만 정작
하나님,부처님의 가장 큰 특성은 그분들에겐 이원성(너와 나)이 없다는 겁니다.
이원성이 없으니 중심을 세우거나 만드는 행위(centering)는 전혀 필요 없지요.
그래서 관념이 아닌 진짜 지금 여기에 살아 계신 신불(神佛)의 특징은 무엇으로든
규정하거나 한정하여 개념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가 그걸 시도한다면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관념속의 신불일뿐 진짜 현존하시는 진리는 아닌 겁니다.
이렇게 중심을 세우거나 만들지 않는 삶을 탈중심화(de-centering)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몸이나 마음을 붙잡고 머물려하는 에고나 아집이 발 붙일데
없는 것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는 '온전히 내어맡겨진 삶'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신묘한 것은 생각으로만 탈중심화(de-centering)하면 바보처럼 되지만
진짜로 탈중심화된 삶을 살면 탈중심화에도 다시 머물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즉 탈중심화하겠다는 방향성마저도 내 생각 관념임을 보면서 센터링(중심화)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무심하게 되면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불교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공조차 다시 공하게 보는 거지요.
이것이 익숙해질 때 그에겐 놀라운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게 됩니다.
즉 에고가 힘을 잃으면서 그대신에 생각으로 정할수 없는 무한한 생명력이
그대신 임재하시게 된다는 겁니다. 여태 내 생각이 이걸 가려왔던 거지요.
그러면 반드시 끊임없는 생명에너지의 생성과 역동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치 정체되어 있던 물꼬가 터지면서 전체물들이 살아서 흐르며 움직이기 시작
한다고나 할까요. 생명의 움직임과 에너지들이 마치 은슬처럼 반짝이는 겁니다.
이것을 옛선사들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또는 ‘활발발(活潑潑)’이라 다른
표현으로 바꿔 썼던 것 뿐입니다. 즉 탈중심화(de-centering)란 결국 작고 협소한
자기굴레를 벗어나 무한함 자체로 비상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정말로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여유와 평화로움, 삶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열립니다.
이것은 전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할 인간의 본성이며 마음의 힘입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우릴 정반대로 끌고 왔지요. 지금도 그런 시도를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향의 에너지가 바로 사탄입니다.
저는 저렇게 해맑고 순수하며 천진난만했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서 가야할
방향을 잃고 이렇게 혼탁한 시류속에 정처없이 떠밀려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가슴 아픕니다. 어디 청소년 뿐이겠습니까? 영성을 잃고 오로지 자기를 좀 더
즐겁게할 쾌락을 향해 정신없이 끌려가는 세상사람들은 또 어떻습니까?
진정한 마음공부란 무한하여 도무지 규정할 수 없는 생명과 그 현상을 바로 보고
그 본질에 활짝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자기에고가 만든 욕망을 가장
중심으로 삼는 현대문명의 방향과는 다른 탈중심화(de-centering) 공부를 통해
더 크고 무한한 생명의 신비를 증득하고, 자기의 신성에 깨어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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