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이 깨달으신 건 항상 상주하는 법(생명)과 그 법이 활동하는(연기) 법칙입니다.
그래서 법과 그 활동인 연기법에 의해 생겨난 세계를 법계(法界)라고도 합니다.
연기법이란 모든 건 상호 의지해 있으며 인과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일정한 조건이면
반드시 일정한 현상(결과)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바다가 움직이는 현상인 파도의 본질이 물이듯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활동과 움직임들도 다 이 법(물)에 의해 생멸한다는 것이지요. 즉 파도가 하나도
안 일어나서 아무것도 없는듯 해도 이미 그 자리엔 법이 상주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가 없다고 해서 바다에 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듯이.
설사 몸마음을 내가 아니라 해도 지금 여기 내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몸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도 적멸해져 사라졌는데 대체 무엇이 남아
있다는 걸까요? 그게 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는 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잡아함경 299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설법하십니다.
“중생이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 실상은 무명에서 연기한 법계다.
12 연기법에서 볼 때 무명에서 연기한 행(行)은 허망한 것이지만 그 행을 있게 하는
법 자체는 허망한 것이 아닌 실상이다. 비구들이여, 무명을 의지하여 나타나는 행(行),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은 진여(眞如)로서 불변하는 법이다. “
즉 [무명-행-식-명색-]으로 이어지는 12연기에서 이름들을 제거하면 거기 실제남는
실상은 (-) 뿐이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계와 중생계는 동시에 한곳에 겹쳐져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중생은 파도인 무명, 행, 식, 명색 같은 것들만 생각 속에서인식하며
따라가는데 반해, 법안은 파도가 아니라 물에 해당하는 실상인 (-)을 항상 먼저 봅니다.
즉 중생은 제 마음(생각)만 보지만 법안은 (-)을 보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연기하는 현상(->)을 왜 법이라고 부르셨는지 아시겠습니까?
또 연기법으로 나타난 현상 세계가 곧 실상 세계(법계)와 둘이지만 둘이 아니라고도
하시는지 감이 오십니까? 즉 중생이 만들어 보는 현상 세계도 본질은 (-)이 만들고
있는 법의 활동이란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은 실상보단 일시적 환영만 보고 있지요.
이는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위의 모든 영상들이 실상은 전부 다 빛의
스펙트럼인 환영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오히려 실제로 있다고 착각 분별하면서,
정작 더 본질적인 빛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과 유사합니다. 결국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일체를 있게하는 실상은 못보고 필름처럼 지나가는 일시적 허상만 보고
있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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