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가 어머님의 사랑에 대해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실제 체험이 되는건 아니듯이,
깨어나려면 순수 투명한 의식이 의식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깨달음에 대한 법문을 듣고 읽어도 큰 도움이 안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 투명한 의식이란 육식의 정보 활동이 아직 시작되기 이전에
스스로 있는 내용이 없는 그냥 자각력으로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아침마다 막 의식이 돌아와 갓 눈을 떴을 때 짧게 나마 체험합니다. 깨어난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도 스스로 독존하는 투명한 의식을 자주 자각(의식)합니다.
하지만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할때에도 이 순수투명한 의식이 없는건 아닙니다.
마치 무지개의 투명한 백색 광선이 빛의 굴절로 인해 7가지 색깔로 나타나듯이
이 순수 투명한 의식은 스스로 가진 인식력으로 ‘안이비설신의’라는 6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그의 인식력을 마치 프리즘처럼 다양하게 펼치는 것입니다.
아기장대라는 풀은 빛수용체를 11개나 가지고 있어 미세한 빛의 변화와 특성도
모두 감지 반응한다고 하는데 인간의 눈은 빛 수용체를 5개만 가지고 있음에 비해
볼 때 그가 가진 빛에 대한 인식력은 인간 감각의 수십배에 달한다 하겠습니다.
다른 비유를 든다면 극장에서 아주 컬러풀한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그 다채로운
빛들의 본질이자 기본은 다 하나의 광원에서 나온 빛이 필름이란 프리즘을 통과
하면서 생겨나는 차이에 불과함과 같습니다. 즉 우리는 빛의 굴절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파동의 색상을 보지만 실상은 단 하나의 빛을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안이비설신의라는 6가지 인식도구도 실은 하나의 살아있는
인식력을 가진 의식이 다양하게 인식력의 종류와 범위를 펼쳐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다양성에 속지 말고 본질적인 순수 투명한 의식을 봐야합니다.
이것은 ‘의식이 의식자체에 집중할 때’ 서서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순수 투명한 의식’이란 것도 부득이하게 글로 표현한
상(相)이기에 그걸 또 상상해서 붙잡으면 안됩니다. 의식이 또 미세하게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속지 말고 이 말이 가르키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봐야 합니다.
그럴 때 당신은 모든 생각,감정,감각과 느낌과 항상 더불어 같이하는 생명의식을
발견하고 체험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살아있음 자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실상이며 ‘의식이 의식에 계속 집중할 때’ 마침내 활짝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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