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뇌(腦)는 그 목적이 육체를 잘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뇌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목적에만 충실할 뿐 사람의 영적 성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후천적인 지식과 교육 때문입니다.
뇌는 기본적으로 몸을 위한 기관이지 영적 구원을 위한 장기가 아닌거지요.
그래서 눈은 원근법을 위해 두 개가 있으며 뇌는 두 개의 초점을 통해서 대상과의
거리를 측정하면서 도망을 가야 할지 접근해서 먹어야 할지를 결정합니다. 이것은
아기 때에 우리에게 어떻게 오온이 생겨나고 점차 인식되는가를 보면 이해됩니다.
제가 한 심리학 잡지를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앞 페이지엔 엄청난 미인 사진이
있었고 바로 뒷 페이지엔 그 미인의 목이 90도로 꺾인 다소 기괴한 사진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명하길 뒷 사진을 보면서도 똑 같은 미적 감각을 느낄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거의 99 % 사람들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요? 미학(美學)에서는 인간의 미적 감각을 기하학에서
찾습니다. 즉 신체에 조형적인 미가 없다면 미인(미남)이 아니란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한 미인이라도 눈썹이 없다면 오히려 무서운 감을 줍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미에 대한 기준은 뇌가 가진 보이지 않는 어떤
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판단 분별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비대하거나 반대로 삐쩍
말랐다면 흉하게 보이지 아름답게 보여서 사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즉 뇌는 우리의 본능에 이미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생물학자들이 말하기로는 자손을 보다 더 완전하게 남기기 위한 자연의
숨겨진 섭리(설계)라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신체의 안전을 위해 눈은 흉측한
색은 일단 경계하도록 작동하거나 일종의 착시 현상도 일부러 일으킵니다.
아마도 눈의 착시 현상에 대한 테스트는 몇 번 심심풀이로라도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신체를 더
잘 보호하기 위한 일족의 두뇌 속임수란 것입니다. 즉 이처럼 두뇌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우리를 속이는 겁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감각적 우뇌 중심으로 태어난 아기가 성장하면서
점차 생각을 쓰다 보니 청소년기만 되어도 거의 좌뇌 중심의 뇌로 변화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무의식의 덫 속에 갇히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영적 깨어남은 몸과 생각을 우선 보호하다간 절대 성취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영성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자기 두뇌를 믿습니다. 그렇길래
그들의 공부가 진척이 거의 없는 겁니다. 즉 두뇌가 저장한 수많은 규정 법칙이
잠재의식과 의식 속에 회로를 형성하고 있기에 자유로워지기가 힘든 거지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각으로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생각(두뇌)에 의지해 살아온 습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이나 감정, 감각도 마찬가지로 먼저 몸을 보호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래서 오온을 공하게 보라는 가르침이 있는 겁니다.
진리는 몸보다는 정신적으로 깨어나야만 체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내가 그토록 믿었던 생각과 대상이 오늘은 달라지고 변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면 괴롭다고 하지만 그 괴로움도 내 몸을 위한 두뇌의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즉 두뇌만 믿다가는 평생 몸의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정견(正見)하라’는 겁니다.
모든 속임수는 지금 일어나니까요. 정견을 통해 우리에게 내재한 우주 정신이
비로소 깨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깨어나면 몸과 마음의 진짜 주인이 돌아와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거지요. 그전에는 다 몸(에고)의 노예로 살 뿐입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