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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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것도 내가 아니다(2026.03.25.) 모든 경전을 보면 본래 면목에 대해 ‘이것이다’라고 직접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대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계속해서 씁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육식 활동(의식)에 의해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은 진정한 참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되는 순간 그것은 나와 둘이 되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지금 여기에 자기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이 몸도 성품은 아니고 마음 활동(오온)도 아닙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색깔, 모양, 소리를 갖고 있어 참나가 아닙니다.
즉 참나의 생명이자 정신인 이 자리는 아무런 색깔, 모양, 소리를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있어 모든 게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꿈속엔 세상과 그 속에서 방황하는
내가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보는 앎의 생생한 생명정신 자리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꿈이 인식 체험될 수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보는 놈을 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여기는 봄, 앎의 현상만이
있을 뿐 놈(者)이 없습니다. 이 3 차원적 존재감을 벗어나 있는 것을 [이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상으로 찾으면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있다면 그건 자기가 만들어낸 주관적 착각이자 분별인거지요.
그런데 꿈과 현실이 과연 그 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를까요? 꿈이나 현실이나 세상이
있고, 그 속에서 방황하는 내가 있으며, 그것을 보고 아는 앎으로서의 ‘생명정신’이
있음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삼위일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몸과 세상이란 마음 활동,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아는 정신(앎).
하지만 우린 여태껏 몸이나 마음 활동 현상(생각, 감정, 감각 등)을 수시로 나로 삼으며
살아왔을 뿐 결코 대상화되지 않았던 이 자리에 대해선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곤 대상이 되는 몸과 마음만을 자기로 삼아서 아웅다웅 살아온 거지요.
하나님도 나와 따로 있는 상대적 대상으로만 믿어온 것이고요. 그러나 이젠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과연 이 우주에서 나란 도대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때가 된 것입니다. 이모든 세상과 대상들을 있게 하는 궁극적 실재는 누구입니까?
당신(정신)없이 과연 이 세상이나 타인이나 모든 재물들이나 대상들이 존재합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가 말하신 “사람이 세상을 다 얻을지라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냐?”란 말씀의 참 뜻입니다.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진짜 내가 아닙니다.
진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있게 하는 바로 당신이란 보이지 않는 정신 그 자체입니다.
그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 말에 속아 3 차원 속에서 찾는다면 식스존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겁니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을 다 있게 하는 것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들과 항상 같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곧 이것이 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무아(無我), 멸진정, 아무것도 없다, 다 비우고 내려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만이 온전하게 드러나도록. 아직 자기란 생명정신에 깨어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뭔가를 또 찾고 붙든 채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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