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다는 것은 뭔가 심각하게 생각하며 계속 노력하고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또 명백하게 정할 수 없는 것을 생각으로 자꾸 정하고 노력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정할 수 없는 것을 신중한 생각으로 무어라 정하면서 길을 찾는 것은
세간의 일을 할 때나 해당하지 마음공부에서는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왜냐면 그럴 경우 그 행위를 하는 주체(나)가 반드시 생겨나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란 아상과 그 기억 및 경험 속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진지하면 할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기억할 것도 많아집니다.
기억할 게 많다는 것은 이미 오염되어서 어둡고 무거워진 마음이란 뜻입니다.
업(業)이란 게 뭡니까? 결국 몸과 마음의 지나온 기억과 경험이란 말입니다.
기억과 경험이란 과거의 것이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생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지금 여기 생생히 살아있는 이것 O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설렁설렁 적당히 공부하란 말일까요? 무슨 부정적인 말을 하면 꼭
그 반대로 생각하는 습관이 논리적 사고에 갇힌 중생의 머리 회전 방식입니다.
그냥 하지만 그 함에도 빠지지 않는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란 겁니다.
마음공부가 잘 될수록 생각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논리는 힘을 잃게 됩니다.
반면에 눈앞은 점점 밝아지고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워지면서
마치 오월의 푸른 하늘처럼 맑고 청정하게 된다면 지금 공부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절대 마음으로 뭔가 생각 느낌을 붙잡고 머무는 게 아니란 겁니다.
공부가 잘 될수록 생명의 힘은 더욱더 새롭게 느껴지면서 눈앞이 점점 미지의
경이로운 세계로 들어가듯이 새삼 체험되게 됩니다. 과거의 현실과 달라진 것은
물론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마음(생각) 이전 자리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공부하고 자기 생각에 지금 공부가 잘나간다 생각된다면 아닙니다.
그것은 미세한 생각 논리가 관여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깨달을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태초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는 오직 다 내려놓고 비워내는 길 하나 뿐입니다.
진지하고 심각한 어린아이 보셨습니까? 어른스러울진 몰라도 아이가 아닙니다.
진지하지 않고 마음이 비워져야(가난해야) 참으로 생명으로 충만한 본래 미지의
경이로운 세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삶의 매 순간에 깨어 있다면 결코 진지하거나
심각할 수가 없습니다. 무게가 전혀 없는 곳에 무게를 갖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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