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곳이 공부가 끝나는 곳이다.(2026.02.11.)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 사단법인 피올라

피할 수 없는 곳이 공부가 끝나는 곳이다.(2026.02.11.)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김연수 교장선생님의 나를 깨우는 아침 명상글입니다

법인

피할 수 없는 곳이 공부가 끝나는 곳이다.(2026.02.11.)

관리자     0건    47회    26-08-06 22:06

대혜종고 선사의 서장(書狀)은 당시 사대부들과 나눈 질의 응답서로 

간화선의 핵심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시랑 벼슬을 가진 ‘증개’라는 유학자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게 깨달음에 대해 꼬치꼬지 자세하게 묻자 대혜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합니다.


이곳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지혜를 쓸 수가 없는 곳이며, 

변론 잘하는 사람도 입을 열 수가 없는 곳이다. 

(중략) 이처럼 생각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서

사량 분별이 꽉 막히고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일 때 

이곳이 바로 공부가 끝나는 곳이며 깨달음이 일어나는 곳이다.


증시랑이 자꾸 그 똑똑한 머리로 사량 분별을 하며 선(禪)을 이해하려고 들자 

생각으로 따지거나 해결하고자 하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어야만 

비로소 이곳이 드러나므로 자꾸 생각을 굴려봐야 소용없다고 강하게 꾸짖은 답변입니다.


이곳을 한자 말로는 無可回避處(무가회피처)라고 하는데 

어디로 도망갈 수 없는, 또는 생각을 굴려 변명하거나 논리로 피할 수 없는 

꽉 막히거나 막다른 자리란 뜻입니다.

선가에서는 이 상황을 ‘은산철벽(銀山鐵壁)’이라고도 합니다. 

선문답을 살펴 보면 생각으론 도무지 답할 수 없는 이런 구조를 갖고 사람을 몰아세웁니다.


즉 그런 곳에 가봐야 비로소 자기 생각으론 어쩔 수 없는 곳이 정말 실재하고 있는 

진실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엔 뭐가 남아 있을까요? 

그건 바로 나란 존재 현상을 나타내고 유지하고 있는 생명의식의 자리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걸 우리는 '그저 텅 빈 채 존재하고 있음'이라고나 표현할 뿐입니다. 


살다 보면 정말 내 생각이나 경험,논리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꽉 막힌 상황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앞에 닥친 일이며 내 몫이라 피하거나 도망갈 수도 없는 거지만 도무지 해법이 없다면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예로서 허허벌판에서 강한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 빈손인 당신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땐 그저 빈 배처럼 나를 비우고 있는 그대로를 기꺼이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이  '이건 말이 안돼! 이 옷은 비 맞으면 안되는 건데!' 해봤자 

그런 건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생명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대로 있거든요.

나와 내 것이 손상되거나 사라질 때, 에고(생각, 감정)는 아우성을 치며

어떻게든지 해법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소용없는 경우가 분명히 닥쳐옵니다. 

죽음이나 파산 등등 그런 일들은 살다 보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이렇게 피할 수조차 없는 곳(상황)에서 우리는 생각, 감각, 감정 등이 무기력해지고 

쓸모없어질 때 비로소 참 진리를 만날 수 있는 겁니다. 


이곳을 인위적으로 만나게 하는 것이 바로 화두 참선입니다.

하지만 저는 굳이 그런 돌아가는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면 삶이 그대로 그런 '피할 수 없는 곳'을 눈앞에 가져올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 범인들은 그냥 울고불고 도망가거나 혼절하기에 바쁘지만, 

깨어날 그릇은 피할 수 없는 그곳에서 바로 자기의 진면목(정체성)을 만나며 

존재의 본질에 활짝 깨어나게 됩니다. 

이곳을 대혜선사는 '피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공부가 끝나는 곳이다'라고 가리키셨던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역경과 고난 속에서 오히려 이곳을 스스로 발견하세요.  

이걸 생각 감정의 혼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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