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가르침의 핵심은 ‘번뇌 즉 보리’에 있습니다.
즉 번뇌의 반대가 보리가 아니라 모든 게 다 (번뇌조차도) 보리란 겁니다.
이 얘길하면 흔히 ‘번뇌도 그 내용물에만 안 빠지면 같은 생명의식 활동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다 생각으로 하는 잘못된 공부입니다.
중생심이 얼마나 생각에 중독되어 있는지 공부가 꽤 되었다는 사람조차도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렇게 생각으로 진리를 해석해서 ‘같다’고 분별합니다.
대체 지금 누가 ‘같다’고 합니까? 진리인 생명자리가 그러던가요?
아닙니다. 진리는 그런 분별 안 합니다.
모든 분별은 다 인간 마음(나)이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내가 모든 생각의 중심 자리에 앉아 주체로서
같다, 다르다 분별하면서 공부한다고 착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렇게 또 다시 생각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퇴전(退轉; 뒤로 물러섬)하게 됩니다.
이런 공부를 해오(解悟; 생각으로만 이해하고 아는 공부)라 하는데
해오는 절대로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사도로 빠져듭니다.
제가 머리로 아는 공부는 하지 말고
온 존재로 되는 공부를 하라고 당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되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른 말로 ‘이거다 저거다 분별하는 내가 사라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무아(無我)가 됩니다. 결국 무아가 안되고
도를 안다는 내가 여전히 버티고 있기 때문에 온갖 분별심이 그치질 않는 것입니다.
번뇌는 언제 보리가 될까요?
결코 내가 ‘이렇고 저러니까 같은 거라서’라고 풀이할 때가 아닙니다.
번뇌를 받고 영향 받을 내가 없을 때(무아), 번뇌가 그대로 보리인 것입니다.
예컨대 가족에게 당장 큰 부담되는 문제 거리를 누가 꺼냈다고 합시다.
그걸 갖고 ‘이것도 내용에만 안 빠지면 다 생명의식이니까’ 하시겠습니까?
그런 해석이 과연 큰 역경계가 닥쳐올 때에 별 도움이나 되던가요?
그래서 생각으로 분석하는 해오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모든 문제는 그걸 문제로 받아들이는 ‘나(란 생각)’만 없다면 그냥 큰 문제란 말에 불과합니다.
금강경이 ‘모든 건 다만 이름(명색)일 뿐이다’라고 누차 얘기 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부디 이름과 해석 속에서 생각으로 조작하며 공부하지 마세요.
후천적 생각으로 생겨난 나만 없으면 세상의 모든 문제도 단번에 사라집니다.
나란 생각이 생겨서 주체로서 있기 시작한 이후부터 내 삶이 힘들어졌습니다.
우린 타인의 생사 문제 같은 큰 문제도 내 거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감도 갖지 않습니다.
즉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로 [나(란 생각)]'란 것입니다.
나란 현상 안에 나(란 생각)만 주재자로서 없다면 늘 ‘번뇌 즉 보리’입니다.
나란 현상 안에 내가 있으니까 ‘번뇌가 번뇌지 어째서 보리야?’ 하고 반문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의 중심이 나(란 생각)가 아니라, '살아있는 O' 자체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참 나를 안다는 가짜 나'로서만 사시겠습니까?
그만큼 고통 받았으면 이젠 가짜 나를 벗고 참 나로 살 때도 되지 않았나요?
가짜 나의 준동과 속임수를 그때마다 즉시 알아보는 걸 '깨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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