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생명의식)에서 물결(생각)이 일어나 물을 찾겠다고 하는 게 마음공부입니다.
물결인 생각은 자꾸 본질(물)을 알고 싶어하지만 문제는 알아도 물결이며
몰라도 물결이란 점에선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온 습관대로 자꾸 더 알려고만 합니다.
성품(물)은 알고 모르는 게 아니므로 생각(물결)은 자기가 이미 물임에 깨어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건 형상이 없어서 만져보거나 느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직 깨어날 뿐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하는 거지요.
꿈이 보이거나 다르게 느껴지거나 만져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꿈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깨어나는 수밖엔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어난다는 말입니까?
악몽을 꾸는 사람이 스스로 깨어나려면 꿈이 현실이 아닌 환영임을 보는 수밖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분별 망상(무명)에서 깨어나려면 자기가 고통 받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환영임을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환영이란 게 대체 뭡니까? 얼른 본다면 마치 늘 있는 거 같지만 자세히 본다면(정견)
그 실체가 없는 것(공)을 말합니다.
작년에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지금도 항상 있습니까?
어제 아침에 내가 골똘히 집중했던 생각이 지금 그 상태 그대로 남아있습니까?
모든 게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격언대로 꿈처럼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일체의 모든 생각을 다 공하게 보라는 겁니다.
우리는 모든 게 다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지만 실은 어느 것도 예외 없이
전부 다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내 몸과 마음 뿐 아니라 지금 내 환경과 주변 사람들조차
전부 다 마찬가지로 그러합니다.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 전체가 공하지 않습니까?
물질도 사라져가는데 하물며 생각 따위가 스스로 굳건히 버티며 남아있겠습니까?
잘 살펴보면 생각이 스스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스러운 생각을 ‘넌 사라지면 안돼!’하면서 꽉 붙들고 있는 겁니다.
이게 무슨 넌센스인가요? 내 주변에 생각처럼 변덕스럽고 허망한 것도 없건마는.
일단 생각을 공하게 환영으로 보기 시작하면 삶의 모든 순간들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합니다. 사실 여태 까지 내가 삶의 모든 측면에 생각으로 이름과 꼬리표를
잔뜩 붙여 놓고 모든 실상을 낡고 뻔한 관념과 감정으로 도배해버렸던 것입니다.
자기 눈앞의 삶에서 생각의 분탕질을 다 지워내고 닦아내야 합니다.
생각은 오늘도 계속해서 과거 해오던 대로 온갖 명색을 좋다 나쁘다, 맞다 아니다
분별하며 꼬리표를 붙여 대고 있을 겁니다. 그걸 하지말란 게 아닙니다.
그건 저절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런 생각의 모든 짓을 공하게만 보라는 것입니다.
그걸로 족합니다. 다만 사흘만 해보신다면 삶이 변화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눈앞이 환해지며 "삶이 원래 이처럼 빛나고 있었던가!"하는 감탄이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공부는 이처럼 생각에 오염된 나를 자꾸 정화하는 것이지 생각에 의지해 뭘 더 찾거나 알거나
어떤 수행의 길을 가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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