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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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깨야 참불교를 꽃피운다 2020.06.20 한국대승불교는 수백년간 중국의 불교영향권에서 단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중국불교란 곧 [깨달음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대로 따라간 결과
고려와 조선시대의 불교는 소극적 운명론에 빠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새로운
이씨왕조의 시작과 함께 척불론과 유교의 숭배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중국 대승불교를 한마디로 요약해 말한다면 열반과 해탈의 가르침이다.
즉 그것은 살기힘든 현실을 능동적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 소극적으로 도피하거나
환상으로 보고 자기만의 내적 경지에 의존하여 위안받는 차원안에 갇히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인권이 유린당하고 먹고살기 힘든 시대였으니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이제 사람들은 끝없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한 끝없는 자유와 행복을 가진자는 오직 하나님(신/부처)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한국 대승불교의 소위 마음자리를 본다(견성)는 묵은 깨달음의 틀을
깨고 한발 더나아가 현실을 천국극락으로 바꾸는 능력까지도 갖춰야 한다고 본다.
즉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깨달음은 자유함과 행복이다.
열반이란 자유함의 극치를 말하며 해탈이란 모든 부자유로부터의 벗어남이다.
예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했지 천국으로 안내할거라 말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자유와 행복을 대체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물질은 항상 유한하므로 만인의 자유는 결국 자기라는 존재(아상)로부터 자유함이라는
방향으로 갈수밖에 없게 된다. 금강경의 인상, 중생상,수자상 역시 아상의 다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에는 분명히 소극적 움츠러드는 자유와 능동적 확장하는
자유가 있다. 이제 시대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자유를 요구한다.
바로 여기에서 필자는 깨달음에 대한 종래의 불교적 관념을 깨부수고 신불교적(?)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버리고 비우기만 하는 수행법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창조하고 체험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다시 초월하고 넘어가는 전혀다른
관점의 수행정진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질을 보다더 정확히 바라보는
정견(正見)법이다.
이제 세계는 전체가 한 개체의 영향을 받고 동시에 모든 개체는 전체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일심동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인류모두가 새로운
영적존재로 거듭나고 변하지 않는한 한두명의 깨달은 자가 나온다해서 인류의 운명이
바뀔수있는 시대는 아니다. 이제는 모든 인류의 존속과 영적성숙이 시급한때가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종래의 이름만 대승이지 실제로는 화두참선이나 오래해서 극소수의
상근기(?)들만 깨닫고 해탈하는 그런 소승적인 불교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깨달음의 대중화가 열려야하며 모든 인류가 하루바삐 더 고차원적이고도
영성적인 차원으로 한단계더 진화하지 못한다면 인류에게 곧 종말이 닥칠 것이다.
이제는 깨달음이 가진자들의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인류가 생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음을 모두 자각해야 한다. 우리모두가 진실로 한뿌리이며 서로 상생하면서도
다같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 자유와 지복을 누릴려면 정신적으로 우리가 더 깨어나서
의식이 진화하는 한 길밖에는 없다고 본다. 이점이 필자가 지금 이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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