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란 것은 대다수가 아는 것처럼 시공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의식이 뭔가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 존재함을 자각할 때를 굳이 이름을 붙여
(분별해서) 부르려 하니, 그 마땅한 명칭을 [지금 여기]라고 하는 것 뿐입니다.
즉 [지금 여기]란 무한한 시공간감을 생각이 분별해서 굳이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라고 부르기 전, 그 이름 붙이지 않은 상태는 어땠을까요?
그것을 바로 의식인 O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의 포로가 되어 단어로
이름을 붙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알려줘도 모릅니다.
그들은 직관으로 즉각 보고 아는 능력(지혜)이 거의 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런 관념 중독증은 모른 채 자꾸 알 수 없는 소리만 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푸념만 합니다. 이건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건 마음의 눈으로 즉각 보고 아는 것이며 이를 깨어남이라 합니다.
자기가 화가 났을 때 그 상태를 즉각 스스로 자기 마음 상태를 보고 아는 게
있습니다. 그 눈길(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이 이미 내 안에 잘 작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보고 알고, 자각하는 게 정견이자 나란 꿈에서 깨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해줘도 정신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은 해보지 않습니다.
그리곤 단지 생각으로 이해시켜 달라고만 합니다. 이해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줘도 알아듣질 못합니다. 자기 내면을 전혀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화가 났다거나 어디가 아프다거나 슬픈 걸 압니다.
그걸 육안으로 보고 아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기가 저절로 자기 내면의
상태를 보고 알게 되는 것( 이걸 느낀다고도 달리 표현한다)입니다. 한번이라도
자기 내면에서 눈이 아닌 마음으로 뭔가 보고 아는 걸 자각하면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내면의 보고 아는 눈길을 누구나 즉각 알 수 있습니다.
깨어남이란 생각하는 게 아니고 이처럼 마음 속 눈길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육안이 보는 게 아니라 마음 속 정신의 이눈길이 육안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정신(순수 의식)이 없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송장처럼 아무것도 못 봅니다.
이건 눈만이 아니고 귀(소리 듣기), 코(냄새 맡기), 혀(맛 보기), 피부(감촉 느끼기)등
다른 감각 기관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감각 기관은 다양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하여 보고 아는 것은 생명의식 하나 뿐입니다.
이게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너무나도 생생한 일임에도 자기 생각에 중독되어
그 생각하는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생각으로 이해시켜 달라고만 합니다.
삶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직접 누리고 체험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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