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상을 각자 자기 생각이 분별해 만든 판단 기준 속에 살아갑니다.
즉 일어난 일에 대한 자기의 해석이 곧 자기 현실이며 그의 삶인 셈입니다.
그래서 일어난 일(fact)은 어쩔 수 없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잘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일의 본질은 다 생각이니 본래 공한 것이며 어디까진 별 게 아닌데
어디부터는 크고 대단하다란 기준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고 주관적이라서,
금강경은 모든 일을 물거품처럼 환영으로 보라고 하셨지만 중생은 아직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일단은 일어난 일에 대해 해석을 잘 해야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습관적으로 좋고 나쁨에 민감하다 보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적당하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면 될 것을 늘 오바(over)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자기에게 부정적이며 스트레스가 됩니다.
예컨대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기도 어려운데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하수(下手)는 “쪽팔린다”거나 “자존심 상한다”며 먼저 부정적으로만
느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수(高手)는 “이럴 때 한번 인내하며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 큰 마음공부를 해봐야지”라고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럴 경우 과연 두 해석 중 어느 게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고 도움이 될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전자 쪽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에고는
항상 전자 쪽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에고가 강력해서 항상 자기 생각과 감정에
지배 당하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역경계를 마주할 때 먼저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면 순경계 시에는 순경계니까 좋고, 역경계 시에도 마음공부로 더 성장하게
되니까 결국 삶은 그 과정에 차이는 다소 있지만 결과는 항상 좋게 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은 일어난 일에 대해 “해석을 잘하라”는 말입니다.
해석을 잘해야 기꺼이 감수하며 즐기게도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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