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는데 저절로 공부가 된다(2026.10.01.)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 사단법인 피올라

그냥 사는데 저절로 공부가 된다(2026.10.01.) > 나를 깨우는 아침명상


김연수 교장선생님의 나를 깨우는 아침 명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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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는데 저절로 공부가 된다(2026.10.01.)

관리자     0건    3회    26-10-01 13:23

‘공부와 삶이 하나다’란 말이 있지요.

이 말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산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데 저절로 공부가 된다’는 

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놈과 사는 놈이 따로 있으면 그건 하나가 아니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면 그냥 사는데 저절로 공부가 될까요? .

그건 생각에 의지해서 살지 말고 내 생각을 계속 통찰 정견할 때 가능해집니다.

모든 생각의 구성요소는 말(단어)이며 12연기의 명색(名色)에 해당합니다.

즉 생각 이전에 [무명-행-식]의 세 단계가 있음을 자세히 보지 못하면 결국 

생각을 붙들고 생각이 나 자신인 양 착각 분별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을 자기 마음이 만든 분별의 꿈속에서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사실(fact)을 보지 못하고 그걸 가르키는 이름이나 이야기(story)를 붙들고 

그게 마치 진실인 양 착각하며 생각 분별에 번뇌 망상을 거듭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존재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내 몸과 마음(느감생)을 계속 정견해야합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몸과 마음도 다 생각과 감각 느낌임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과 그것을 ‘보고 아는 놈’이 본래부터 나눠져 있음을 

자각 정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초견성입니다. O을 어렴풋이 보는 거지요.


이것은 헤아려서 이해하는 생각으로는 절대 체험할 수 없습니다.

직접 자기가 지속적으로 이 둘이 본래 따로 였음을 분명하게 느낄 때까지 가열차게 

정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O 자리에 뭔가가 구체적 형상으로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 알지 못할 것이 텅 빈 채 있다’는 감이 오고 잡힙니다. 


그래서 O을 무아라고도 말하는 겁니다. 도대체 뭐라고 할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주의할 점은 아무리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그걸 아는 놈은 있는 겁니다.

이것까지 보아야 합니다. 이것까지를 못보고 그냥 ‘아무것도 없다’를 받아들이면

그것은 불행히도 자기 교묘한 생각에 다시 붙잡힌 겁니다. 세밀하게 보세요.

분명 ‘아무것도 없다’를 보고 아는 놈이 홀로 남아 있어야 이 말도 가능합니다.


신기한 것은 O 자리가 선명해질수록 몸과 마음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흐려

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우도 제 8도를 보면 O만 남는 겁니다(인우구망). 

하지만 진리는 항상 중도이며 늘 ‘색즉시공인 동시에 공즉시색’이지요. 


그래서 그에도 머물지말고 십우도의 제 9도(반본환원)으로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은 관심을 주지 않을 땐 환영같고 아지랑이같아, 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붙들고 

집착하면 한순간에 환영 같던 대상이 엄연한 현실적 존재로써 갑자기 번개같이 

변신하게 됩니다. 


대상을 다시 잘보면 처음과는 달리 보일 때가 있지요? 

즉 마음이 더 붙잡고 머무니까 그 대상이 그만큼 현실감있게 재인식되는 겁니다.

이처럼 공(무아)과 색(유아)이 마음 상태에 따라 오묘하게 공존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깨어난 자의 삶은 [무아를 아는 자리에서 자기가 붙들고 창조하는 다양한 

유아를 경험한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삶의 진실이며 삶 전체가 인식과 분별에 의해 다르게 

보이고 체험되는 세상의 실상인 겁니다. 


따라서 그냥 사는데 저절로 공부가 되는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반드시 먼저 내 몸과 

마음이 본래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 내 마음의 인식 활동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며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당신은 그토록 찾던 O을 눈앞에서 보시게 

될것입니다. 


즉 모든 게 다 인식의 문제라 O도 그걸 보는 세밀한 안목이 열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심안이 열리려면 존재의 중심이 몸 마음에서 O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이걸 모른 채 무작정 자기 몸과 마음은 세밀하게 정견하지도 않은 채 자꾸 O만 보려

한다면 그것은 모래로 밥짓기처럼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수고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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