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며 허망한 것입니다.
그냥 그림자나 연기같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영이지요.
생각은 의식의 힘으로 두뇌를 움직여 심신을 위해 기능하게 하는 인간 몸이
가진 보이지 않는 육식 활동 능력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
하지만 육체와 물질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워낙 오래 살다보니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번개같이 생각으로 분별하며 그속에 스스로 갇히는 습관을 갖게 됐지요.
그래서 “그 생각을 놓아라, 버려라.”란 말도 생겨났지만 쉽지 않은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생각은 올라올 때마다 다 놓고 버려야만 할까요?
그게 바로 생각과 싸우는 짓입니다. 언제까지 자기의 능력과 싸워야 할까요?
내 능력이라면 생명의식의 활동이니 그것도 결국은 진리의 일부가 아닙니까?
의식의 바다에 생각이란 파도가 올라온다면 그 파도와 싸우며 멀리 해야할까요?
(본질인)바다에서 (현상인)파도를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즉 (영원한)본질이
(허망한)현상을 무한 창조하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보는 게 바로 ‘있는 그대로를 봄’입니다.
세밀히 잘 살펴보면 우주 전체가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생명 정신이 나란 현상으로 나타나서 온갖 생각,
감정, 감각을 다 창조하며 물질 몸의 삶을 경험해보는 현실이야말로 우주 전체가
살아있는 생명 현상 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우주전체가 생명 정신이 창조한 그의 상상력이자 장대한 생각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우주 속 물질 현상들은 다 생멸합니다.
그래서 필경에는 다 공(空)으로 돌아가지만, 그러나 반야심경에서처럼 물질 현상은
끝없이 다시 생멸을 반복하며 다시 다양한 모습들(色)로 영원히 생겨납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이 모든 (생멸하는)세계의 본질은 (생멸 않는)생명입니다.
바닷물이 있어야 파도도 계속 생멸하며 움직입니다. 그러니 바닷물(O)을 보려면
물이 만든 눈앞의 파도만 붙들고 머물거나 내려놓겠다며 그것과 싸우지 마세요.
생각을 아무것도 아닌 허망한 것으로 볼 때 비로소 생각의 정체가 보입니다.
생각의 정체란 그저 의식이 두뇌 회로를 거쳐 꾸며낸 말 잔치요 논리일 뿐입니다.
생각을 허망하게 보세요. 물론 존중할 생각의 내용은 존중하지만 생각 자체는
본래 의식 기능의 춤이며 장난일 뿐이지, 그 이상의 실체가 아닌 텅빈 허공인 겁니다.
그러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올라오고 지나가더라도 흔들림이 없게 됩니다.
물론 그 생각내용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다 알지만 그 조차도 본래는
텅빈 환영이요, 실재가 아닌 것이기에 실상 '있는 그대로' 를 경험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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